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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나의 2011 [10-1]

태국에서 사는 동안 저의 신분은 공식적으로 '여행객'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이 태국에 가면 공항에서 3개월짜리 관광비자를 주잖아요?
저는 그 관광비자로 2년반을 살았던 거였어요. 제가 태국에서 딱히 경제활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 제게는 관광비자가 적절한 것이기도 했죠. 태국에는 그런식으로 3달에 한번씩 관광비자를 갱신해 가면서 10년 이상 살고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나마 한국사람들은 3달이지만 미국사람들은 한달에 한번씩 외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그런분들은 정말 대단하죠.

태국은 포용력이 대단한 나라인 것이 여권이 온통 태국 출입국 도장으로 가득한 외국인들이 몇번이고 재입국을 하더라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별 다른 질문도 없이 새 비자 도장을 쿵쿵 찍어 줍니다.
대인배죠?

그리하여 세달에 한번씩, 저는 태국을 떠나 어디든 다녀와야 했어요.
태국은 지리적으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과는 육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육로로 여행할 경우 교통비가 거의 안든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나게 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시아 항공 여행의 진정한 허브로서 전세계 어느 곳으로 떠나든 싼 티켓을 구하기도 쉽지요. 그래서 방콕 쑤완나품 공항에 가보면 전세계의 거의 모든 항공사 비행기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각국의 저가 항공사들이 경쟁적으로 태국에 취항하고 있어서 예매만 서두르면 한국의 고속철 가격 보다도 싼 가격에 방콕-싱가폴 왕복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태국에 살면서 저는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를 좀 더 배우는 것은 제가 태국에 정착하면서 세운 큰 계획 중에 하나였어요. 어릴적부터 유럽을 동경하고 돈만 생기면 유럽에 다녀 오느라 상대적으로 가 볼 기회가 적었던 '가까운 이웃'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홍콩, 네팔, 인도, 타이완을 가봤고요, 몇 나라는 두세번씩 다녀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요즘 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고 넓은 시야를 가진 유럽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요,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생각해 볼만 합니다.

'Asia is DEF rising; 아시아가 학실히 뜨고 있다.'
뭐, 동의 합니다.

아무튼 째박이와의 여행에서 이번 비자 만료일 까지의 세달 동안의 생활이 대폭 생략된 것을 앞편에서부터 제 이야기를 쭉 따라오신 분들(고맙습니다)이라면 발견 하셨을텐데요,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갔습니다. 저는 그 기간 동안 태국의 게으른 길거리 개들 마냥 축 늘어져서 허송세월이 뭔가를 스스로에게 보여 줬습니다. 그래서 이번 '비자 클리어; 태국 교민들이 비자 갱신을 부르는 표현'는 만료일 전날에야 알아 차렸어요.

그래서 후다닥 에어아시아 싸이트에 접속 했습니다.
싱가폴은 다녀왔고, 타이베이는 노선이 없어졌고, 홍콩은 많이 다녀왔고, 발리는 비싸고.
기왕 가는거 안가본 데에 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발견한 곳이 바로


그남자의 아침 업무


여기, 말레이시아 '페낭;삐낭'이었습니다.
저는 또 그간 한 것도 없으면서 바닷가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어야겠다 마음 먹고 그동안 쌓인 호텔 예약 싸이트 '아고다' 포인트로 해변의 괜찮은 호텔도 예약 했습니다. (제가 머무는 동안 몇군데 더 둘러 봤는데 이곳이 가장 낫더군요.)

제가 간간히 듣고 상상했던 페낭은 그저 작은 휴양지였는데요, 저는 착륙 전에 하늘에서 이미 어리둥절 해졌습니다. 페낭은 꽤 큰 주였어요. 인구가 무려 150만에 육박 한답니다.

제국주의 시절의 서양인들은 아시아에만 오면 왜 하필 그렇게 '진주'가 생각 났는지 페낭 역시 '동남아시아의 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군요. 검색창에 '아시아의 진주' 한번 검색해 보세요. 어지간한 해양 도시들은 진주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땐 그게 유행이었던건지 그 사람들 상상력이 영 모자랐던 건지 그냥 뭐 좀 웃기네요.

그 별명 때문인지 페낭을 둘러 보면서 다른 '진주'도시들의 운명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페낭이 홍콩만큼 컸더라면 아시아의 오늘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싱가폴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면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나고 말이죠. 


3대 락사


페낭은 주변의 다른 매력적인 휴양지에 가려져 있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알고보니 엄청난 음식 천국이더군요. 페낭에는 말레이계:화교:인도계의 인구가 4:4:1정도로 살고 있고요, 다인종 도시 정체성에 걸맞게 다양한 먹거리들이 온 섬에 넘쳐 납니다.

저는 예전에 싱가폴 갔다가 락사 맛을 본 뒤로 락사빠가 됐는데요, 태국에만 올라 가더라도 락사를 제대로 하는 집들을 거의 찾기가 힘들어서 그 맛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저는 락사야말로 말레이와 화교 음식 문화가 바람직한 교배를 이뤄낸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페낭에 도착한 직후부터 저는 락사가 먹고 싶어서 보이는 식당들마다 들어가서 '락사를 내놓으시오.' 했는데 번번히 실패 했습니다. 태국 식당 어디든 가서 '똠얌꿍 주세요' 하면 주는 것처럼 락사도 말레이시아 어디든 있는건줄 알았거든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저의 '락사욕'은 끓어올라 삼주간 자위를 참은 신교대생 처럼 얼굴이 노랗게 떴었답니다. 저 집은 '페낭힐'이라는 관광객들 다 가는 곳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켁록시;극락사'라는- 또 다른 관광객들 다 가는 곳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어요.

저렇게 명시도 높은 악랄한 빨강노랑 컬러 배합으로 '락사' 써놨는데, 제가 어떻게 그냥 지나 가겠습니까? 주문하고 락사를 받고 한입 떠먹고, 이럴수가 개놀랐습니다.

우와! 뭐냐 이거 지금? 이거 나 지금 뭐 먹은거냐?
이 락사집이 왜 하필 극락사 가는 길에 있는 건지 이해가 확 제멋대로 돼버렸어요. 심지어 이 락사를 맛 본 사람들이 절 이름을 '극'락사로 지은건 아닐까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

이 곳의 락사를 감히 저는 이 지구 최고의 락사로 임명합니다.

제가 너무 감동을 하면서 먹고 있는 것이 주인 눈에는 딱 보이는지, 저기 저 안경 낀 총각 '케빈'이 말을 걸어 줬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용어로 영어를 쓰고 있어서 젊은이들은 영어 실력이 상당합니다. 케빈은 들통에서 농도가 매우 높은 진국을 푸고 계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저 락사집을 물려받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본인은 이미 대학을 마쳤고요. 페낭에서 워낙 유명한 락사집이고, 멀리서 일부러 저곳 락사를 맛보러 오는 손님들도 있어서 케빈은 아버지께 '우리도 프랜차이즈화 하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고집불통 이시라는군요. 제가 맛있다고 환희에 젖은 눈망울로 존경을 담아 진심으로 찬양을 해드리니까 허허 웃으시는데 그 웃음의 포스는 진정! '나도 다 알아'의 자신감이 가득하지만, 오히려 그런 분들만 낼 수 있는 겸양적인 거시기였습니다.

저 자리에서 저모양으로 3대째, 58년 동안 이어온 락사 한그릇의 가격은 세상에, 천이백원.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국물 한방울 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저 울 뻔 했어요.
 

미스터 '힐'


케빈과 이야기를 나누고, 락사 맛에 감동, 아버지 고집에 감동, 가격에 감동한 뒤 벅찬 마음을 달래며 극락사로 걸어가고 있는데, 제 곁에 차 한대가 스르륵 멈추더니 저분이 창문을 내리고, '극락사 가시오?' 물어 보셨습니다. '예' 했더니 '타시오. 나도 지금 절에 가오.' 하시길래 고개 꾸벅 인사를 하고 낼름 탔습니다. 호호

힐씨는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안녕을 기원하러 절에 가는 길이셨답니다. 제가 도착 했을때 절은 이미 관광객들에게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힐씨가 스님께 잘 말씀해 주셔서 저는 절 안 구경도 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힐씨는 절더러 혹시 내려가는 길에도 차를 타고 가고 싶으면 자기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태워다 주시겠다고까지 하셨지만 제가 기다리겠다고 하면 기도를 예정보다 일찍 끝내실 것 같아 사양 했습니다.

페낭에서 저는 사람들이 참 '착하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습니다.
페낭은 '올드스쿨'한 지역사회적인 친절함이 곳곳에 살아있는 곳이었어요.
또 페낭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은 '말레이시아에서는 페낭 인물이 가장 좋다'며 은근히 홍보 하데요.
그것은 여러분이 직접 판단 하세요.

페낭은 저처럼 태국이나 주변국에 사시는 분들이 좀 색다른 동네를 구경하고 싶으실 때 가면 참 좋을 것 같고요, 태국의 끄라비 만큼 해변이 아름답다거나, 싱가폴 만큼 현대적인 곳은 아니니까 한국에서 페낭만을 목적으로 휴가내서 가시기에는 뭔가 아쉬운 것이 많을 수도 있겠습니다.

단, 홍콩도 지겹고 태국은 너무 많이 다녀오신 '식신' 여러분은 반드시 순례해야 할 아시아의 미식 성지입니다. 하루에 다섯끼씩 먹더라도 삼박사일 정도는 훌쩍 갈거에요. 여러가지 음식을 아쉬움 없이 맛 보시려면 혼자 보다는 두세분이서 같이 가시면 더 좋겠네요. 

'넷' 아빠


8월에는 엄마가 제가 태국으로 이사한 뒤 처음으로 저를 보러 오기로 했습니다.
으아아 좋아라.
저는 엄마가 오기 전부터 절대로 엄마랑 싸우지 않고 잘 지내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마침 이래저래 통장에 꽤 두둑한 돈도 들어와 있어서 엄마에게 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들을 모조리 다 선물할 계획도 세웠죠. (엄청 효자같다.)

태국요리 따봉!



엄마는 저희 형제 덕분에 태국 음식을 자주 먹어봐서 팍치고 똠양꿍이고 못 자시는 음식이 없습니다.
도착 이튿날 점심에 우리집 바로 옆 짐톰슨씨 댁에 가서 한상 촥 차려 드렸더니 아주 잘 드시더라고요.

사실 엄마는 태국에 별로 올 마음이 없었다는데요(째박이 살때는 몇번이나 갔었으면서. 매정하다), 엄친딸이 자기 어머니와 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울엄마 뱅기표도 끊어주는 바람에 오게된 거랍니다. 그 엄친딸은 저희 형제와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서 같이 자란데다 제 동생이랑 동갑인 동생인데, 아들인 저도 못해준 것을 대신 해준 것이 무척 고마우면서도 뭔가 엄청 민망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어릴때도 특히 더 어리게 느껴졌던 그 꼬마가 이렇게 숙녀가 된 것을 보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 건지 아아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어요.

유강 아줌마는 약 10년만에 은선이는 15년 넘게만에 본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같이 다니다 보니까 어렸을 때 기억들이 다 살아 나더군요. 제가 까맣게 있고 있었던 기억속 저 한켠의 망각의 샘에 스포트라이트가 '팅' 켜진 것처럼요. 

우리 시대의 성소


저는 태국에서 좋은 곳이라는 좋은 곳은 거의 다 가봤으니까 엄마가 있는 삼일 동안 그런 곳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아줌마네 모녀도 같이 오셨으니까 울엄마 기도 팍팍 살려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좋은 호텔이나 빌라같은 곳을 예약해서 하룻밤이라도 가서 자고 놀고 오자고 했는데 싫다는 거에요. 차라리 그 돈 아껴서 맛있는 거를 한상 더 차려먹자(저랑 똑같죠?)고 강하게 주장 하더라고요.

아줌마네는 태국이 처음이시라 방콕에서 왕궁같은 곳도 둘러보고 싶어 하셔서 결국 어디 가서 자고 오는 것은 포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딱 한군데 만이라도 인상깊은 곳을 떠올리다가 생각해낸 곳이 바로 이곳, 후아힌 '바라이 스파'였어요. 제가 처음 가봤을 때부터, '여기는 울엄마아빠를 꼭 모시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던 곳입니다. 스파를 받는 시간동안 만큼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는, '왕처럼' 대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어요.
 
저는 엄마와 아줌마네를 '좋은 곳을 구경 시켜 주겠다'고 꼬드겨 일단 저곳으로 유인해서 바다가 보이는 야외 카페에 앉혀 놓고 화장실에 다녀 온다며 혼자 리셉션에 가서 스파 예약을 해버렸습니다. 

'십만원 넘는 마사지는 죽어도 안받는다.'
'삼만원이나 십만원이나 마사지는 다 똑같다.'가 신념인 우리 엄마한테 들키면 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깜짝 선물도 물거품이 되는 수가 있었거든요.

해변 가서 바다에 발도 담그고, 말도 타고, 놀 거 다 논 엄마는 '가자 이제 방콕' 했지만 저는 '지금 가면 차가 막히니까 조금만 더 앉았다 가자'며 갖은 꼼수를 다 부렸습니다. 이미 엄마는 눈치를 챈 것 같았어요. 한 5분 있다가 또 가자고 보채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어제 미리 예약하고 결제도 다 했다. 이거 안받으면 위약금 물어야 한다.'
고 뻥 쳤습니다.
 

예쁜 허여사


스파 이런데 데리고 가면 엄마들은 원래 얼씨구나 좋타쿠나 하는거 아니었어요?
하여튼 유별난 엄마 둬서 효자 아들이 고생입니다. 호호

바라이 스파는 리셉션까지 가는 길도 참 볼만 하지만 진짜 재밌는 볼거리는 리셉션 다음 본격적인 스파 '궁전'쪽에 더 많이 있어요. 앙코르 왓을 본따 지었다는 그 안쪽은 오로지 스파 고객들에게만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오랫동안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던 '앙코르 왓'의 문은 열려 관광객들 차지가 됐지만 어쩌면 우리시대에 가장 보석같은 공간들의 문은 꼭꼭 숨어 신용카드로만 열 수 있다는거 참 재밌어요.

엄마와 아줌마 모녀가 스파를 받는 동안 바라이에서 저에게 수영장과 사우나를 쓸 수 있도록 해주어서 저 수영장에서 달을 보며 배영을 좀 했습니다. 수영장 폭이 좁으니까 참 색다른 효과가 있더군요.
우주가 압축된 느낌이 난달까요? 
 

캅쿤CAR!


옹 기억 나세요?
이건 옹의 차입니다.
밀라노에 있는 옹의 차 앞에서 왜 방콕에 온 울엄마가 서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을까요?

7월에 옹네 전가족이 옹을 보러 밀라노에 갔었습니다.
옹은 어쩔땐 꼭 초등학생 같아서 가족들과 상봉한 뒤 가족들을 거실에 딱 앉혀놓고 그동안 밀라노에서 자기가 한 공부와 작업물들을 선보이는 '키노트'를 하셨다는군요.

그 작업들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대단히 기뻐 하셨답니다. 당신도 그런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화교 이민 2세대로서 공부 보다는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하셨었거든요. 옹이 비록 후계자 수업 도중에 회사를 박차고 나갔지만 밀라노에서 성실하게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 매우 마음에 들어 하셨답니다. 그 밤 내내 여러번 큰소리로 기분 좋게 웃으셨다는군요. 옹은 거기서 '유학을 결정하는데 모과의 영향이 컸다.'는 말도 한 모양이에요.

밀라노에서 돌아온 옹의 여동생 '입'을 만나서 국수를 먹는 자리에서 입이 '아빠가 모과에게 고맙다더라.'고 하셨다고 전해 주는데, 으아 정말 그동안 죄송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으면서 저도 엄청 기뻤어요.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곧 울엄마가 태국에 놀러 온다.'는 말을 했는데요, 그날 입이 집에 가서 그걸 자기 부모님께 얘기 했나봐요.

그 다음 일요일(태국 사람들은 일요일 마다 온가족이 모여서 패밀리 디너를 함께 합니다.), 입이 저 차를 몰고, 옹네 부모님이 다른 차를 한대 몰고 온가족이 제 콘도 주차장으로 찾아 왔습니다.

'이 차로 어머니 편안하게 구경 잘 시켜 드리라.'면서요.
아니,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원래 차는 '부부끼리도 절대 빌려주는 거 아니다' 아닙니까?

차 키를 받아들고, 차를 돌려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옹네 부모님을 향해 '와이;태국식 합장인사'를 하면서 고마움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갚나요?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3박 4일.
엄마가 가네요.

짧았지만 꽤 알찬 일정으로 움직였고, 다행히 여러가지 요인들이 착착 맞아줘서 엄마와 아줌마, 은선이 모두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유강 아줌마는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아이고, 나도 태국에 와서 살고 싶다, 너무너무 좋다.'고 말씀 하셔서 저도 기분이 무진장 좋았어요.

저때 엄마를 본 것은 제가 2010년 월드컵 때 서울에 가서 엄마를 보고 거의 13개월만에 처음 본 거였습니다. 그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에 그녀와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거였어요. 

포옹을 하고 저렇게 출국 심사대로 간 엄마는 제가 막 불러도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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