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녀간 후 저는 엄청난 감정의 동요를 겪게 됩니다.
휴양지에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누군가 왔다가 떠난 뒤에 혼자 남는 거였어요.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크다잖아요? 아무래도 엄마라 그런지 이번엔 그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올해는 특히 많은 분들이 방콕에 놀러 오셨던 터라 여름 내내 방문자가 없었던 주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8월의 어떤 날에는 하루에 서로 모르는 사이인 네팀이 겹친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정양이 다녀간 이후에는 트위터를 통해 '당분간은 책 쓰는 거에 집중하기 위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도 했지만, 저는 사람들 만나는 거를 참말 좋아 하니까 누가 왔다 하면 만사 제치고 쫄랑쫄랑 튀어 나갔죠.
제가 실수한 것은 거기서 제 생활 리듬을 너무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일상생활의 틀을 반듯하게 잡아놓고 손님 맞이를 해야 했었는데, 그게 뒤바뀌어 버린거죠. 게다가 엄마가 떠난 때가 휴가철의 막바지라 손님도 끊겼는데요, 손님이 끊기니까 뭘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니까 8월 한달 동안 제가 경험했던- 극과 극을 오간 감정의 타임라인이 드디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저를 옴쏙 집어 삼켰습니다.
방바닥에 '찡쪽;태국말로 도마뱀'처럼 딱 달라 붙어서 창문만 봤어요.
제 콘도 거실 바닥은 대리석 타일이라 창문 열고 팬티만 입고 누워 있으면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이럭저럭 갔는데, 멍 해졌다가 코 끝이 찡해졌다가 한숨도 나오고 그랬습니다. 결국 한숨을 쉬게된 것은-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올해 제 책을 내는 것에 관해서 실무적인 이야기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했던 터라 저는 올해 내내 뭔가를 쓰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가을 문턱까지 오도록 그것을 완전히 팽개쳐 놓고 있었던 거에요.
몇 번 시도는 해봤습니다.
그러나 태국에는 '아무 것도 안하러' 간 거라 그런지 호흡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것도 35pt로)한페이지 쓰는데 하루 온종일이 걸리더라고요. 그럴때 트위터랑 페이스북은 왜 그렇게 또 재밌는 건지.
여기저기 까페도 가보고 도서관도 가보고 노력을 했지만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제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사까지 생각해 봤어요.
'어디 가서 숨어야겠다.'
드디어 이 결심이 오똑 서서 저를 지배하기 시작 했습니다.
일단 아이폰을 없애고(허이구), 어디 외딴 섬이나, 아니면 태국 산중의 절에라도 들어 가야겠다. 아, 태국에서 승려체험은 안해본 거니까 이것도 해보면 참 의미 있을 것 같고 뭐 그랬죠.
심각하게 한창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대만 친구들이 왔습니다.
작년에 처음 타이베이에 갔을 때 만난 친구의 친구들. 이친구들이 연락도 없이 방콕에 와서 쨘 전화를 걸어온 겁니다. 8월의 막바지였고, 이 친구들은 딱 2박 3일 짜리 주말 휴가를 온 거여서 '얘네 까지만 딱 놀고 이제 정말 당분간 손님은 그만 받아야겠다.' 마음 먹고 또 나갔어요.
그런데 여기서 저는 완전 럭비공이 돼버렸습니다.
작년에 처음 타이베이에 다녀 오고나서 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쭝궈말이 배우고 싶어 졌었습니다. 늘 시끄럽고 우습게만 들리던 그 언어를 타이완 사람들이 매우 품위 있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확 달아 올랐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2010년 말과 올초의 목표는 '타이베이로의 이사'였습니다. 제 생활에 변화를 주고, 거기서 좀 새로운 힘을 얻고자 했었던 거죠.
저는 그것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제가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하면 꼭 하는 '주변사람 들에게 선언'도 이미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발적으로 스칸디나비아에 갔고, 거기서 리프레시가 돼뻐리면서 타이베이 건은 새까맣게 잊고야 말았죠.
아아, 그런데 이 친구들이 꺼진 줄 알았던 타이베이 불씨에 가스통을 터뜨려 버렸어요.
얘네들은 물론 방콕에서 저와 함께 '최고의 휴가(지들이 그랬음)'를 보냈고, 결국 비행기 표까지 바꿔서 하루는 우리집에서 더 지내고 갑니다. 둘 다 성격이 아주 저돌적이고 현실적이라, 제가 '타이베이로 이사할 마음이 있었고, 지금도 좀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뭐든 다 도와 주겠다며 얼른 표 끊어서 타이베이에 오라는 겁니다. 화교들이 뭔가 마음에 불이 붙으면 그들이 명절때 터뜨리는 폭죽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그건 뭐 저도 그러니까 일단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방콕에 사는 동안 그 누구가 오더라도 공항에 배웅 나가는 것만은 절대로 안했어요.
거기 갔다가 같이 갔던 사람 보내고 혼자서 돌아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친구들 가는 날은 모두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집에서 인사를 제대로 못 해서 제가 공항에 배웅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자폭 한거죠.
이 친구들이 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된 저는 다시 오슬로 전의 저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예의 그 거실 바닥에 맨몸으로 늘어져서 몇 차례 몸을 비비 꼰 후 벌떡 일어나 외칩니다!
'타이베이에 가겠다.'
와다!
진짜 갔습니다.
저 친구들이 1일에 떠났고요, 저는 3일에 정신 차려보니 타이베이에 가 있더라고요.
와, 저 이제보니 꽤 미남이네요. 호호
저는 9일 동안 '1차 답사'를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가서 본 '그 타이베이'가 제가 제대로 본 건가 아닌가 거기 사는 것처럼 생활을 해봤어요.
음. 맞게 본 것 같았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방콕에 돌아 갔더니요.
신화사 빈티지스트
아니 저 자식 또 방콕에 온 거였어요.
엄마한테는 '강원도에 다녀 오겠다'고 했다는데요 하하 미친놈, 엄마는 이미 태국에 왔을 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과연 인간인가! 아무튼 째박이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진짜 이번엔 마지막으로 딱 열흘만 놀다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라.
우리 신누나는 제가 방콕에 사는 동안 최다 방문 기록을 보유하신 분입니다.
방콕에 처음 오셨던 것도 제가 방콕에 있는 동안이었으니까, 방콕을 만난 이후에는 휴가는 거의 방콕으로만 다니신 셈이죠. 제가 곁에서 지켜 보면서 누나한테 참 여러가지로 배운게 많은데요, 많이 하면 누나가 싫어할 것 같으니까 딱 한가지만 들자면, 무진장 부지런 합니다. 아무리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져도 아침이 되면 칼같이 일어 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랑 째박이가 정오쯤 일어나서 비실비실 전화 하면 대개 누나는 이미 오전 일정을 마치고 어디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신 후였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누나를 자주 기다리게 했던 점 죄송해요. 허허
따라! (아스케키 아줌마가 찍어준 사진인데 역시 세계문화유산 유적지의 아스케키 아줌마 사진 실력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이번 방문은 지난 방문을 통해 태국에서 친해진 째박과 신누나가 서울에서 술을 마시다가 꽐라가 된 김에 충동적으로 "가자!" 하고 진짜 티켓을 끊으면서 성사된 것이었습니다. 두사람 다 서너달 만에 다시 태국에 온 것이 약간 민망 했는지 이번엔 '앙코르 왓 보러 왔다!'는 타이틀을 걸고 왔습니다.
왓?
앙코르 왓?
저도 두 번 생각 않고 오케이 했습니다.
앙코르는- 제가 못 가본 세계의 다른 보물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만 감히 '인간이 지구에 남긴 유적 중 가장 위대한 곳'이라 생각하는 곳인데다 작년에 혼자 가보고 '친구들과 함께 꼭 다시 한번 와야겠다.' 하는 마음도 먹었었으니까요.
무슨 우연인지 정확히 일년만에 앙코르에 돌아 왔습니다.
확실히 제가 낫네요.
베스트 컷이 될 뻔한 이사진이 아쉬운 이유는 저 옆에 물병이랑 제 손에 들린 모자와 셔츠 탓도 있지만 왼쪽 째박이 책임도 큽니다. (안되면 동생 탓)
째박이는 이번 여행에 더벅머리인 채로 왔는데요, 저런 좋은 곳에서 형제가 이런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게 되는 것은 인생의 졀정적인 축복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화양연화>의 양조위님 코스프레 하려고 일부러 이발 하고 셔츠도 챙겨 갔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사람들이 째박이가 저보다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잘 생겼으면 뭐 합니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삑사리를 내는데요.
주제 넘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전반적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셔서 그런지 요즘 여행 다니는 한국 사람들 보면 예전 보다는 현격히 '룩'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옷차림이나 자기 얼굴에 전혀 신경을 안쓰는 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론돈이나 빠리 시내에서 카고 반바지에 정글탐사 갈 때 쓰는 인디아나 존스 모자 쓰고 다니시는 분들 아직도 계실런지 모르지만, 그런분들은 나중에 자기 사진 찍어 놓은거 보면 백이면 백 후회합니다.
평생에 두번 다시 가기 힘든 멋진 곳에 힘들게 찾아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사진 찍어 놓고 그걸 나중에 혼자서만 꺼내보고 '윽' 하는 취미있는 분이 아니시라면요, 아무리 적게 쓰고 좀 힘든 여행을 하더라도, 옷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갖고 가셔서 깨끗하게 입으세요. 세상에는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냉정한 곳들이 아직도 "실제로" 존재 하고요, 특히 동양 남자들은 이 부분은 좀 신경 써야만 어딜가나 억울한 일을 당할 확률이 줄어 듭니다. 저를 믿고 셔츠 한벌 정도는 꼭 챙겨가 보세요. 여행이 한껏 풍성해 질겁니다.
아침상 받으셔요
앙코르 왓이 있는 씨엠립에는 예상치 못한 재미들도 상당 합니다.
이곳은 작년에 씨엠립에 처음 왔을때 우연히 만난 채감독님 덕분에 알게 된 호텔인데요, 시설과 서비스에 비해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데다 아침을 전날밤에 주문하면 새벽 네시(앙코르 왓 일출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부터 손님 방으로 이렇게 아침상을 배달해 차려 줍니다. 다양한 메뉴에서 여러가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해놔서 저희는 좀 식탐을 부려 봤는데요, 이틀밤 묵는 동안 두번 다 음식을 남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많아서요. 그래도 사원들을 돌아 다니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 하니까 아침은 반드시 배불리 챙겨 드세요.
프렌치 콜로니얼 스타일 복도
씨엠립에서의 두번째 숙소였던 이곳은 제가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텔입니다.
작년에 왔을때 묵어보고 여러모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던 곳이라, 형제자매들에게 꼭 체험 시켜주고 싶어서 좀 무리를 했지만 하루는 이곳에서 묵기로 했어요.
아침식사에도 샴페인을 무한 제공하고, 잠시만 밖에 나갔다 와도 청소(두툼하고 성인 키만한 타월도 새걸로 갈아 놓고요)를 말끔하게 해놓는 것은 물론 손님의 비닐 봉다리까지 가지런히 접어 놓는 엄청난 곳입니다. 투숙 이틀째가 되면 호텔의 직원들이 '서/마담' 대신 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75년전 그때 그대로의 자바라문이 달린 프랑스식 엘레베이터는 제복을 입은 전담 뽀이가 직접 운행 하고요. 객실 내외부의 집기며 장식들도 무척 클래식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도시 속 과장된 호사의 전통을 하나도 흐트르지 않고 박제하듯 오늘에 옮기고 있는 곳입니다. 19세기 말로 돌아 간듯한 묘한 기분. 오히려 유럽에 가면 이런 정도의 서비스는 더이상 찾아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태, 비와?
가운데 있는, 혼자만 비 맞은 땀보는 '태'입니다.
태는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작가 청년인데요, 장성하여 서울에 일 하러 가서 자기 적성에 맞고 일도 마음에 들었던 홍보대행사에 취직해 다니다가 청천벽력 같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바로 할아버지께서 그의 이름을 대한민국 호적에도 올려 놓으신 거였어요. 아이고. 군대를 가던지, 한국을 떠나야 했답니다. 그래서 급하게 주변 국가를 알아 보다가 태는 예정에도 없던 태국행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태의 직장 상사였던 저의 지인 배린다 누나가 페이스 북으로 태를 저에게 소개시켜 줬습니다.
'이러저러 해서 태국을 한번도 안가보고 갈 생각도 없었던 친구가 별안간 태국에 가서 살게 되었으니 만나서 도와줄 수 있는게 있으면 좀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라.'는 거였어요. 제가 또 누나들 형들 말씀을 어찌나 잘 듣는 앤지 쟤가 방콕에 도착한 이튿날 딱 만났죠.
좀 이야기 해보니까 괜찮은 애더라고요. 그래서 참 친해 졌습니다.
태는 네이리브 뉴욝 어메리인데다가 그 동네서는 보기 드문 '문법적으로 완벽한' 고상한 영어를 쓰고 있어서 저는 태에게 '내가 영어를 문법 틀리게 말할 때는 고쳐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요, 개뇬이 가끔 그걸로 저를 은근히 짜증나게 했던 거 빼면 우리는 좋은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한국인이라는 씨족적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둘 다 쓸데 없는 거 갖고 물고 늘어지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라 어떤 이야기 도중에는 '야, 이거 뭐 재밌는 거 하나 나오겠는데?' 하기도 했지만 대개 그러고 말았습니다. 후후
하여튼 쟤는 저렇게 더운걸 못 참고 땀을 저렇게 머리 위에 수도 꼭지 틀어 놓은 것 마냥 늘상 흘리지만 태국에서도 항상 택시 안타고요(방콕 택시 세계에서 가장 싼 거 아시죠?) 만날 걸어 다닙니다. 뉴요커들은 왜 그리 항상 티를 냅니까 어딜가나?
저 뒤로 보이는 붉은 빛이 도는 사원은 여성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반티스레이' 사원입니다. 사원 전체가 대단히 정교한 세공으로 가득해서 굉장히 아름답고, 붉은 색 돌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환상적인 곳이지만, 이날 이때는 태 뿐만 아니라 우리 넷 전부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더운 날이라 찬찬히 둘러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앙코르 왓에 가시는 분들은 반드시 미리 책을 몇 권 구해서 읽어 보고 가시고요, 정 시간이 부족 하시면 관련된 다큐멘터리라도 몇 편 챙겨서 보고 가세요. 워낙 광활한 유적지인데다, 가는 곳마다 사연이 사연이 넘쳐 흐르는 곳이라 그냥 쓱 둘러 보시면, 보면 볼 수록 아쉬움만 더해지는 곳입니다.
가실 때 날씨를 꼭 미리 확인 하시고요. 제가 갔던 9월 중순에서 말경은 햇볕이 뜨거워서 모자, 썬글라스, 긴 셔츠, 썬크림, 손수건은 반드시 챙겨 가셔야 합니다.
저 분 보면서 저는 제 친구 나난 생각 했어요.
앙코르 왓의 수많은 사원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얼굴 사원' 바이욘 사원입니다.
저 사원 어디에 서 있던지 저런 큰바위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째박이가 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앙코르 왓에 가고 싶어진 이유를 제가 물어 봤더니요.
'진짜 와! 말이 안나올 정도로 엄청난 뭔가가 보고 싶었다.'데요.
저는 째박이도 몇 년 더 저처럼 놀까봐 참 불안했었는데요, 이 여행 마치고 서울에 돌아 가더니 저의 다른 형제 둘과 함께 정말 새 사업을 일으켜 세우더라고요.
'앙코르 파워'를 얻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