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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2010년 1월 1일, 바가토

박모과 pak mogua 2015. 3. 12. 22:45

제대 후 태국에 정착해 처음 맞는 연말, 군대 가기 전에 쌓아둔 로열 오키드 플러스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곳을 보니까 인도와 네팔이 있었다. 제대 후 첫 새해를 에베레스트 처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 보다 초월적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배경으로 맞으면 그 이후의 내 삶에 광명이 깃들 것 같았다.


인도에 딱히 환상이 없었고, 동행한 옹이 인도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후기를 많이 접한 터라 우리는 인도 2주, 네팔 3주 한달짜리 신년 여행을 계획했다.


도착은 뭄바이. 지금은 어마어마한 신공항이 완성되어 환상 국가에 어울리는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때 우리 비행기 양쪽으로 들어온 공항 주변은 '올 것이 오고 있구나.'할 정도로 어마무지한 난장판 슬럼 그 자체였다. 태국인 승무원들은 '공항을 나서는 순간 바로 시작될 것'이라며 우리에게 생수병 몇개를 건네 행운을 빌어 줌으로써 여정 초기에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더해 줬다.


숙소가 있던 주후 해변에서 우리를 아침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닌 큰 무리의 요란한 어린 거지들을 마주하고 난처했던 몇 분여를 제외하면 뭄바이는 재미난 곳이었다. 워낙 늘상 수만명의 관광객 또는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 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불시에 트리키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잡소리를 늘어 놓고 그럴싸 하게 속임수를 꺼내 놓지만, 남자 둘이 못 당해낼 정도가 아니어서 더 재밌었고, 몇은 귀엽기 까지 했다.


개인기



뭄바이에서 세밤을 자고 버스로 밤새 달려 고아에 갔다. 

'고아 트랜스', '안주나 비트' 등 전자음악 씬의 중요한 단어들에 어원을 제공한 싸이키델릭 트랜스의 고향. 지명 만으로도 기분이 붕 뜨게 하는 첩첩의 포스. 전자음악 성지 순례자가 인도에 가서 어떻게 고아를 안 갈 수가 있겠나? 원래 이 여행에는 계획이 히말라야 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최소한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인도 전도에서 고아가 인도에 있었지 깨달은 순간, 나는 거길 가야만 했다.


버스에서는 금발로 땋은 긴 드레드 머리를 파인애플 처럼 머리 위로 틀어 올리고 초등학생 등교가방만 한 봇짐 하나만 달랑 싸서 맨발로 여행하고 있던 스웨덴 친구 욘을 만났는데, 휴게소에 내릴 때마다 같이 오줌을 싸고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텄다. 새벽에 고아에 도착 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나는 그 넓은 고아 땅에서 어느 해변에 가야 할 지도 안정하고 있었던 것. 욘도 계획이랄 게 있을 관상이 아니었지만 그는 여행 중에 어디서 들었다며 "'아람볼'이라는 동네에 가면 좋다던데? 너네 계획 없으면 같이 갈래?" 

그렇게 우리는 팀이 됐다.


욘과 옹. 안주나 비치


아람볼은 굉장한 곳이었다. 요가와 명상에 심취한 유럽 여행자들이 주로 몰려 들어 동네 전체에 평화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해변가 식당과 방갈로들에도 한 없이 늘어져 있기에 딱 알맞은 느림이 흐르고 있었다. 


아람볼 주말 밤


내친김에 욘은 우리와 숙소까지 나눠 쓰게 됐고, 매 끼니 랍스터와 상어를 굽는 해산물 바베큐를 원했던 우리 호흡에 말려 들어 잠시 본연의 무전 여행자 자세를 망각하고 우리와 같이 먹으러 다니다가 본국에 전화해 엄마에게 송금을 받는 극히 나 같은 사태까지 경험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이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는데,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고아는 지금까지 주민 중 카톨릭 신자 비중이 높아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큰 명절로 지내고 있었다. 그 경건함의 분위기가 매우 독특했다.


숙소 근처, 매일 지나 다녔던 성당



마푸사 시장 옆 성소.


열시쯤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해변에 나가 해변 식당에서 바다를 보면서 아침을 먹고 모든 좌석이 와식인 까페에 가서 늘어져 커피를 한잔 마시고 졸다가 바다에 한번 들어 갔다가, 씨킴 친구들네 바에 가서 한잔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좀이 쑤시면 오토바이를 타고 한두시간 다른 해변들로 드라이브를 다녔다.


아람볼 브렉퍼스트- 토스트 2 써니 사이드 업 2 로스티드 감자 & 짜이 + 레모나다 혹은 튜보그


매일매일 할 것들이 있었고, 짧은 시간 머무는 동안 믿을 수 있는 속 깊고 좋은 사람들을 사귀어서 원하는 건 다 취했으니까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늘어졌다. 우리는 그래서 네팔이 아니라 고아에서 새해를 맞이 하기로 일정을 크게 수정했다. 서둘러 북으로 올라갈 하등의 욕구가 없었으니까.


매일 갔던 백그라운드 바 씨킴 가족네 똘똘한 아들 베론



12월 31일, 그동안 사귀어 놓은 친구들 덕에 몇 군데 큰 파티들 정보를 손에 넣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그런 곳들에 막상 가보니 별 재미가 없었다. 나랑 옹은 그래서 친구들 무리에서 나와 바가토 해변에서 열리고 있다는 거대한 뉴이어 페스티벌을 찾아 나섰다. 바가토 해변에 도착하니 어디선가 굉장히 큰 소리로 음악이 들려 왔는데, 우리는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못찾고 헤매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찾아서 걷다가 앉아서 바다를 보고, 또 30분 정도를 걷다가 튜보그를 마시고, 또 30분 정도를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얕은 절벽 위 야자수 아래에 앉았다.


이미 절정으로 취해있던 나한테 이 때 살면서 했던 것 중에 가장 웃긴 생각이 솟아났다- 

이 야자수가 되어 이 야자수가 평생 이자리에서 보는 밤하늘과 별들과, 그너머 우주를 바라보고 싶어진 것이다. 

읭? 

아빠는 나와 재양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관악산에 데리고 가서 요가식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방법과 명상하는 것을 가르쳐 줬었다. 이후에 아빠가 히란야, 피라밋에 관심을 갖게 되어 서점에서 그런 책들을 심부름으로 사다주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라는 것들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연고가 없는 외딴 곳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운의 체인이 몰고온 겹겹이 불행한 순간들에 그곳 사람들 그 누구의 눈도 쳐다보지 못할 만큼 불신이 끓어 올라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 될 때가 있는데, 그럴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 안에 불순한 기운을 밖으로 뱉어내는 명상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그것도 효과가 없어 불안함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때는 금속으로 마감된 곳을 피해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 오기도 했다. 나한테는 침엽수가 아닌 나무들이 잘 맞는다.


나는 기마자세로 야자수에 내 척추를 딱 갖다 붙이고 팔은 뒤로 둘러 그 나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정신을 한데 모아 야자수에게 내 뜻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나한테 여기서 당신이 봤던 것을 보여 줄 수 있나요? 당신은 뭘 봤고, 지금 뭘 보고 있나요?'


맞은 편 부드러운 풀밭에 앉아있던 옹이 나를 보고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 했던지 큰 소리를 내며 껄껄 웃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진지하게 마음을 모았다. 야자수 마디 사이를 마사지 하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니 파티장을 못찾아 부아가 났던 것이 차분하게 가라 앉고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고요함.

고요.

옹도 웃음을 멈췄다.

정적과 파도 소리만 있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웅

눈을 감고 있던 내 안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끓어 올랐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눈을 뜰 때가 아니라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두손을 기도손으로 모으고 꽉 마주 잡았다.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나와 흥건해 졌다. 몸 안의 압력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안구가 붓고, 고막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부르르 부르르르르르르-


나는 마침내 두 팔을 손바닥이 바깥, 손가락들이 머리 위로 오게 하늘로 활짝 열고 내 작은 눈도 열었다.


SHA-!

몸은 무게가 없이 가벼워 졌다. 바닥에 실로 고정해둔 풍선처럼 붕 떠올라서-

극적으로 밝아진 내 눈에 들어온 심연의 검은 하늘에는 그 야자수가 뿌리를 한자리에 내려 박고 거기에 일생동안 서서 봤던 별들의 궤적과 그 자리에 서서 땅과 저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나눴던 에너지 교감의 타임라인이 별들의 빛으로 찍고 이은 점과 선으로 펼쳐졌다. 길고 넓은 거미줄 같은 형태였다. 순식간에 굉장히 어마어마한 정보가 쏟아 졌지만 복잡한 형태 너머에 아름다운 질서와 짜임새가 있었다. 내 위주로 돌던 이 우주의 흐름이 순간 이 야자수 위주로 변경됐다. 차원이, 우주가 완전히 뒤집힌 기분이었다.

SHA-!

  

이것은 내가 나무와 나눈 가장 깊은 교감 활동이었다.

전송이 끝나고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두 손을 가슴팍에서 가볍게 모아 멈춰섰다. 숨 쉬는 속도를 천천히 줄여 코로 크게 한숨 들이쉬고 입으로 천천히 내뱉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쾌감에 흠뻑 젖어 음악도 없이 나무 앞에서 한동안 춤을 췄다.


그 야자수가 서있는 자리에서 본 그때 그 바다와, 하늘, 달이다.



황토색 절벽들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서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졌다. 저 너머엔 2010년 첫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돌들은 햇살을 받자 더 뚜렷한 황갈색을 뿜어내기 시작 했는데, 그 힘이 가슴에 와닿을 정도였다.


바가토


아침이 밝아서 보니 저 나무들 중간중간 우리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있었다.

모두 각자가 바랬던 대로 새해를 맞았겠지.


Mega Site!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장소를 한명도 아니고 둘이서 밤새도록 못찾고 근처에서 뱅뱅 돌며 헤맸다니. 아침에 이 곳을 보고 우리는 지난 밤 있었던 저 모든 일들이 누가 꾸며낸 매직 같다며 믿을 수가 없다고 저쪽에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인도 젊은이들에게 고아는 가장 인기 있는 새해맞이 장소다.

아침, 오토바이를 찾으러 가는 길에 한 -큰 도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인도 남자가 엄청나게 취해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추태를 부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다른 -큰 도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그 남자와 비슷한 또래의 인도 여성이 눈을 크게 뜨고 '당신 같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예의 없는 사람은 고아에 올 자격이 없어. Shame on you!' 큰소리로 단호하게 꾸짖는 것을 봤다. 그러니까 남자가 곧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광경은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나의 2011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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