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일찍 들어가서 TV 켜놓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는데 근호한테 메세지가 왔다.
얼마전에 내가 엄마를 데리러 대구에 갔을 때 근호도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다.
안부를 묻다가 근호가 갑자기 <몬스터 콜>을 봤냐고 물어봤다.
내가 엄청 좋아할 거라고, 아니 사랑할 거라고 한번 보라고 했다.
바로 틀었다.
엄마가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는 몽상꾸러기 왕따 남자애가 엄마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고, 엄마를 떠나 보내면서 겪는 사단을 그린 영국 영화였다.
응, 근호야 왜 보라고 했는지 알겠다.
고마워.
위로가 됐어.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도 다른 사람들이 그려낸 이야기인데, 내가 겪은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을 넘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다. 복받쳐 울었던 건 아니고, 그냥 눈물이 주룩 흘러 내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님 성함만 보고 골라서 본 영화였다, <줄리에타>
어떤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아, 아, 아!' 침대에 누워서 랩탑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자세로 어딘가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봤을 수도 있지만 검색 없이는 솔직히 누군지 잘 모르겠는 낯선 배우들이 끌고 나가는데도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게 됐다.
인물들의 시선과 감정을 바짝 붙어 잡아 내면서 부르주아적인 고상함으로 매 장면 색을 쏘는데 페드로 님에 대한 고결한 존경심이 불타 올랐다.
인간사 알 수 없는게 상대방 속 마음이라지만, 웬지 가족들 마음은 얼마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버리는 게 나 뿐 아니라 전 인류적인 공통점이라는 것을 페드로 아저씨가 나를 자기 무릎을 배게 하고 들려주는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 자책하지 마라 모과야, 나도 우리도 인간들 다 그래.'
아빠가 일기장에 나한테는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렇게 많이 써왔다는 거,
나한테 서운하고 아쉬운 게 그렇게 많았다는 거,
고통받고 있었다는 거,
그런거를 모르고 아빠가 쓰러지도록 방치했었다는 거.
아마도 죽어야 풀릴만한 내 마음 속 앙금을 들여다 보인 듯 콕 찔렸고, 공기 좋은 곳에서 한숨 크게 쉰 것 같았다.
이 영화 보고 엄마한테 잘해야지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지난주, 지지난주 엄마 일하는 곳 근처까지 물건을 사러 갔다가도 시간이 빠듯해 엄마 보러 가는 걸 건너 뛰었다.
엄마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와 같은 상황을 지나온 분들께 분명히 위로가 될 만한 영화들입니다.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