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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E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라는 영화 보셨여요?
멋쟁이 사진가 보리 누나가 직접 수입해서 한국에서 개봉한 타이완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차분함 속에서 자전거 타고 맞는 바람같이 전한 타이페이라는 도시가 한국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덕인지, 요즘은 검색창에 타이페이를 치면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관련 결과가 좌르륵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한번 보세요. 작고 귀엽고 깔끔한 영화입니다. 

그러면 타이페이에는 그런 까페들이 정말 있을까요? 

네, 좀 있는 것 같아요.

저야 뭐,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인지 하루에 어떤 부분은 까페에 앉아서 보내야만 잠들기 전에 '아, 나 오늘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하는 사람이어요. 어느 도시에 가던지, 좋은 까페를 찾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서 좋은 친구들과 좋은 커피를 마시며 해도해도 끝이 없는 농담을 합니다. 길에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 하고요, 그사람들 주변의 공기만 보고 '쟤네는 어제 처음 만나서 자고 집에 갈 타이밍 놓쳐서 서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이런 막 돼먹은 상상을 하죠. 멍하게 있는 것도 좋습니다. 궁둥이 끝은 의자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걸쳐 놓고, 담배도 피웁니다. 오늘은 뭐, 혼자서 맥북을 켜놓고 '아, 쟤네는 왜 꼭 까페에 와서 저렇게 노트북 펼쳐 놓고 뭐 하는척 하냐?'의 주인공이 되었군요.

외관이 참 들어가고 싶게 생겼죠?


노란 그림, 흘러 내리는 벽, 나무 집


간판. 안구정화 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타이페이 까페 되겠어요. (ATM)


요즘 타이페이에도 도쿄풍의, 그러니까 도키도키 쁘띠쁘띠한 까페들이 많이 생겼어요. 어여쁜 빈티지 가구들이 가득하고, 선남선녀들이 야사시한 유니폼을 입고 서빙을 하고, 대개 허니 버터 브레드랄지, 팬케잌이랄지, 딸기를 얹은 와플이랄지를 내는- 소녀들과, 소녀들과 같이 와야 했던 측은한 표정의 남친들과, 소녀 취향의 소년들이 "대기표를 받아 들고" 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사진을 찍고, 몸에 설탕을 쏟아 붓는 그런 곳들 말이에요. 대기표까지 받아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창밖에 보이는데 거기서 저처럼 혼자 앉아 2시간씩 이러고 있는게 가능 하겠습니까?

실수로 그런 곳들에 몇번 갔다가 '윽, 이게 아닌데'를 경험하면 스타벅스가 참 편하고 좋은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진짜에요.
그래서 저 여기서 스타벅스에도 여러번 갔었어요.

저와 어디든 다녀본 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생판 모르는 데를 가도 가이드 북을 안들고 갑니다. 포카라도, 앙코르왓도, 보되도 빈손으로 딸랑딸랑 갔습니다.

촉으로 찾는다!가 제 자존심입니다.
그래도 촉이 맞는 곳에서는 오히려 현지인들이 '너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 왔니?' 하기도 합니다.

여기도 제 촉으로 찾아낸 곳이에요.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로 쓸모는 없는데 예쁜 것들을 팝니다.


요즘 타이페이에는 계속 비가 오네요


타이완이 좋은건 연중 초록이 가득 하다는 것


타이완 사람들은 우리와 외모가 참 비슷한데요, 성격은 우리와 비교하면 오히려 태국 사람들이랑 비슷합니다.
느긋해요.
제가 타이완을 두번째 베이스로 택한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이사람들 성격이 느긋하고, '이지 고잉'이고, 자주 웃는 데는 여러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단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 속에서, 어디서나 초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물 주고 있네요.


어딜가나 '그놈의' 빈티지.


담배 피우려고 나오면 직원이 쌩긋 웃으면서 재떨이 갖다 줍니다.


이 타이완쓰판따쉐 (National Taiwan NORMAL Uni) 주변에는 자파니주 콜로니얼 스타일의, 아니 그때 그 나무로 만든 그 일본집들이 여러채 남아 있는데요 그것들을 어디처럼 다 때려 부수지 않고 수리를 해서 시에서 문화재로 보호합니다. 이 건물도 그런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내부를 개량한 곳 되겠습니다. 내외부 모두 훌륭하게 잘 가꿨습니다.
얼마나 뿌듯 할까요? 이런 거 하나 완성해 놓으면.

오늘은 월요일인데도 낮부터 꽉 찼네요.


제가 추측컨데 여기는 뭔가 타이완 문화계 종사자가 운영하는게 확실합니다.
낮부터 멀쩡하게 생긴, 아트 깽깽이스런 잉여들이 또 저마다 맥북은 다 펼쳐 놓고 뭔가 끄적끄적 대고 있고요, 벽에는 사진가의 사진을 전시해 놓고 판매도 합니다. 작품도 교체하는 것으로 볼 때 전시공간으로 작가들에게 벽을 내어 주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음악의 선곡이 사람을 갖다가 오래 앉아 있도록 해줍니다.
이젠 좀 물리는 스테판뽐뿌냑 계를 비웃는 모단한 밴드 음악들을 틀어 주는데요, 두시간 됐는데도 같은 노래가 안나오는 걸 보면 플레이리스트가 상당히 방대한 용량인 것 같군요.
모단한 밴드라고 해서 K팝 밴드를 상상 하시면 여기에 오셨을때 저랑은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이프렌드' 노래를 신청하면 노노노!

자파니주 콜로니얼 스타일 우든 하우스의 오리지널 스트럭쳐를 그대로 살렸군요.


유식해 보이죠 저?
저런건 저렇게 써야 있어 보이는 것 같길래요.
저런 식으로 쓴 글 필요한 분 계시면 말씀 하세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있어 보이게 최선을 다해 써드릴게요. 맛있는 거 사먹을 돈 주시면요.

저는 아직 메뉴도 못 읽습니다. 프랑스식 호피티 요린가? =.=


자, 이제 음식 사진을 보세요.

제가 사실 점심에 도시락을 든든히 먹었더니 배가 하나도 안고픈데도 먹은지 세시간 만에 '씨푸드 라자냐'를 시켰답니다.

이 디쉬의 가격은 만원인데요, 이걸 먹으면 음료 한잔을 그냥 주네요? 여기 아메리카노가 4400원이니까 참 좋은 딜입니다.

뻔한 풀들과 지네가 구운 포카치아, 인정사정 없이 쏟아 구운 모짜렐라가 이렇게 딱!


만원에 이 정도면 상도를 반듯하게 지키는 가게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만들어 팔려면 맛도 맛이지만 양 조절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라자냐는 까페밀 치고는 약간 많은 감이 있긴 하지만요, 한입 맛 보는 것 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들어 줄만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면 만칠천원 받으면서 거대 접시에 삼각김밥 만큼 음식 내는 짓 따위 그만 두란 말이다! 
넌 고든 램지가 아니야!

안에는 스뫀트 쌜몬을 라자냐 판이랑 번갈아 가며 깔았더군요. 소리 내서 치이즈 해보세요, 치이즈!


까페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훌륭했습니다. 포카치아도 적당히 맹맛인게 저 치즈들을 척척 덮고 휘휘 돌려 감아 베어 먹기에 딱 좋았고요. 안에서 씹히는 스뫀트 쌜몬과 크림의 조합도 귀여웠어요. 

코스트코 가는 거 무지 좋아하는, 미국에 중학교 때 건너가 대학 마치고 온 피부가 뽀얗고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여동생이 토요타 해리어 트렁크 가득 장을 봐다가 기분 내어 만들어 준 남부 미쿡식 라자냐 같은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코스트코에서 장 봐다 한번 거하게 해먹고 약 5인분 이상의 식재료들은 대개 냉장고에서 한달간 숙성된 뒤 '대'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겨 운명을 마무리하죠.)

타이베이 코스트코 구경기 타이베이 코스트코 검색해서 오신 분들은 클릭 하세요.


 

제가 음식을 막 먹고 있는데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 주길래 '미안하지만 나 밥 다 먹고 다시 갖다 줄 수 있냐'고 하니까 또 쌩긋 웃으면서 'Sure'하네요. 페이를 많이 주나? 어쩜 이렇게 생긋생긋 일을 하지? 이것도 다 주인의 복이에요 그쵸?

아무튼 제가 식사를 마치고 나니까 (네, 저 음식 남기는 거 죄라고 생각하는 올드스쿨 사람이에요.) 커피도 새로 내려서 뜨겁고 크레마가 살아 있는 채로 다시 갖다 줬습니다.

소화 시킬겸 까페와 연결된 가게를 구경 했어요. 오래 보면 뭐 살까봐 사진만 찍었음.


뭐 이런 귀여운 게 다 있어?


이만큼 쓰고 나니 밤이 되었네요. 이 사진에 맥북이 몇대 있게요?


벌써 세시간째 앉아 있는데요, (저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도 있음) 여기는 직원들이 눈치도 주지 않고 레몬 띄운 물을 계속 부워 주는군요. 그래서 커피 한잔 더 시켰어요.

타이페이에서 여러분이 경험 하시게 될 놀라운 점 한가지는요, 이분들이 대륙의 쭝궈인들과 같은 만다린어를 사용 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더라도 시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까페가 손님으로 꽉 찼을 때도 조용한 평소의 목소리로 말을 해도 건너편에 앉은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어요. 공공장소에서 타이완 사람들의 매너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이분들이야 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 높고, '수긍할만 하며', 품위 있는 공중도덕을 이룩한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게 제가 타이페이로 만다린을 배우러 온 이유이기도 해요.
인간은 인간처럼 살아야 가장 매력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이런 귀여운 창을 내 놓으면 떼어 가고 싶잖아!

자,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고요?



안 가르쳐 주~지!

*타이베이의 공식 한글 표기는 타이베이가 맞지만, 이 글에서는 제목과 문맥을 맞추기 위해 타이페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