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밀란, 플로렌스, 로움, 내이플스... 이런 영어식 발음은 우리 이제 잊기로 해요. 내고향 서울이 쎄울이 아닌 것처럼, 밀라노는 밀라노! '밀'은 짧게, '라'에 힘을 주어 '라아' 하며 살짝 끌어주며 '아'에서 반단조 꺾어 바로 '노' 하는 겁니다. 자기 도시의 이름을 딱 그렇게 노래하듯 부르며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입니다.
저 네그로니는 다른 곳들의 네그로니와는 달리 진 대신 스푸만떼를 넣어 만든 '바 바쏘'의 씨그니쳐 칵테일입니다. 아주 유서깊은 바고요, 저 뒤에 달력 보시면 아시겠지만, 빈티지를 위한 빈지티가 아닌- 뭐,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빈티지랄까요? 이 네그로니에 들어가는 중요한 재료인 깜파리 역시 밀라노에서 발명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리쿠어 되겠습니다. 이 여행 뒤에 저는 언제나 찬장에 깜파리를 구비해 놓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달콤 쌉싸래 하면서 강렬한 붉은 색으로 칵테일의 풍미를 짙게 하는 멋진 액체.
저는 이 액체를 격하게 사랑하게 된 나머지 어느 순간 제가 '뜨거운 남쪽의 한낮, 하늘은 쌔파랗고요, 해변의 노천 바에서 갓 짜낸 샛노란 오렌지 쥬스를 얼음을 채워 목이 긴 잔에 따라 놓고 그 위에 쵹 뿌린 깜파리' 같은 사람인 것 같다는 망상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여기 이 아름다운 커플을 보십시오.
저는 이들이 매 식사시간 저렇게 메뉴를 보며 서로 고민하고, 의논하고, 주문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아, 내 친구 너무 예쁘게 잘 살고 있구나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의 무궁무진한 먹거리와 조리법에 자신의 오늘 기분, 내면의 목소리, 평소의 기호를 퍼즐 맞추듯 완벽하게 조율해 내는 것이 바로 '주문'이더라고요. 사실 그건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유독 그것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이탈리아에서라면 얼마든지 까다로워져도 좋습니다. 더 까다로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개인일수록 더욱 더 개성있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입니다.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왜? 왜? 왜?' 이런 질문도 참 많이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탈리안들의 식탁에서는요.
그러니까 '아무거나'라고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밀라노에 오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파브리치오의 절친들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안 알프스로 스노보드를 타러 갔습니다. 이것도 복이지라. 첫 보딩은 노르웨이에서, 두번째는 알프스에서. 2000-3000M 높이에서 내려오는 코스들도 있는데요, 그냥 뭐 저에게는 그 높이가 실감이 안나더라고요. 어릴때부터 탔다는 파브리치오와 그의 친구들은 2000M 넘는 곳에도 올라 가던데, 저도 어릴때 부지런히 배워 놓을걸 하면서 스키캠프라면 질색 했던 어린 시절을 처음으로 원망했습니다. 제가 발 시린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 해서요.
초보급도 안되는 제 주제에 감히 빙질 비교를 하자면요, 역시 노르웨이의 눈이 훨씬 부드럽고 푹신했습니다. 이때는 이미 2월 중순 무렵이라 이쪽 지역의 눈은 좀 거칠어진 시기였다는 것은 감안해 주세요.
에쓰프레쏘를 처음 마셔본 열여섯의 그 겨울, 그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기차를 잘못 타도 한참 잘못 타는 바람에 가게 된 헝가리의 외딴 시골역에서 였어요. 역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날씨는 사람을 잡을듯 매섭게 추웠습니다. 다음 기차는 아직도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요. 간이역이라 추위를 피할 곳이 없었던 저는 역무원 누나에게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 눈동자를 만들어 보여주고 (열여섯이었다니깐요) 다행히 역무원 사무실 안에 들어가 난로를 쬐며 기차를 기다릴 수 있게 됐죠. 후덕한 풍채의 역무원 누나는 흰 콧수염이 난 다른 역무원 할아버지와 상당히 거친 액센트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 봅니다. 저는 씩 웃었어요. 그러자 그녀는 '까페?' 물어 보았습니다. 순진했던 저는 두번 거절 끝에 달콤한 내고향의 다방커피를 떠올리고는 백기를 들고 '예쓰, 플리즈' 하고야 말았어요.
잠시 뒤 그녀가 커피를 건네 왔습니다.
모카포트로 갓 뽑은 쌔까만 커피를요.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앜! 이게 뭐야?!
그 아득함이란, 그 충격과 공포란!
누나는 저를 너무나 인자한 눈빛으로,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정말 뼈를 깎는 심정으로 거짓 웃음을 지어 보여야만 했습니다. 제게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한잔을 천천히, 아니, 이건 더 고통 스러우니까 약간 식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원샷 했습니다. 약이다 생각하고 마셨던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제가 어찌나 위장을 잘 했던지 급기야 누나는 거절할 틈도 안주고 웃으며 한잔을 더 따라 주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카페인 하이'라는게 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손이 부르부르 떨리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저도 모르게 다리를 후르르르 떨고 있었죠.
...그랬던 제가 이제는 이사 갈때도 에쓰프레쏘 만드는 기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네요. 인생 참.
이탈리아에서는 커피 하면 대부분 저 에쓰프레쏘를 가리킵디다. 대개 바에 서서 한잔 쨘 마시고 카페인 충전하여 엉덩이에 힘 빡 주고 일상으로 활기차게 돌아 가더군요. 식권처럼 여러장씩 에쓰프레쏘 쿠폰을 파는 까페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는 또 동네 아저씨들이 바에 기대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걸고 참견하고 그런 화기애매한 거시기.
'요리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우월합니다. 이런 풍경은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한국 남성 여러분들 부엌 들어가도 꼬추 안떨어져요. 그거 다 뻥이에요. 엄마들이 요리하는 거 재밌으니까 못하게 한거임. 오히려 쟤네들 신체 구조를 생각하면 우리는 부엌에 좀 더 자주 드나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안해보신 분들은 해보세요. 재밌습니다.
파브리치오네 산장 주방에서 마씨모가 자기네 '페밀리 레써피'대로 만든 이 파스타 좀 보세요. 여자친구인 바바라와 같이 저 동네 시장에 나가 사온 그동네 특산 버섯과 최소한의 재료 만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냈네요. 맛이요? 훌륭한 버섯은 열 와규 안부럽죠. 저는 아주 접시를 혀로 싹싹 핥았습니다. 따로 설겆이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 였어요. 아, 또 먹고 싶네요.
이곳은 삼성 신제품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식으로 설명 하자면 '테이트 모던에 대한 밀라네제들의 대항마' 노베첸또 뮤지엄입니다.
격변의 1900년대, '예술'이라는 것이 좀 더 아리송한 면모로 한바탕 변태한 그 시기에 이탈리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저 때만 해도 개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밀라노선 만나는 사람마다 노베첸또 가봤냐고 물어보곤 했던 '잇 뮤지엄' 되겠어요.
컬렉션은 물론 훌륭하고요, 그 유명한 밀라노 두오모를 좀 더 색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게 있으면 바로 입으로 이야기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활기는 뮤지엄 안에서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분위기는 그야말로 왁자지껄 합니다. 뮤지엄 같은 데 가면 괜히 불편하고, 기침만 해도 죄인이 될 것 같다거나 이런 걱정은 여기서는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습니다 와이너리 방문.
-파브리치오가 밀라노에서 하고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한 제 대답이었어요.
마침 그도 와인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흔쾌히 저의 부탁을 듣고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와이너리 몇군데를 둘러보는 와인 테이스팅 트립을 계획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일 모스넬' 이라는 와이너리로, '프란챠코르타' 품종의 스파클링 와인이 유명한 곳이었어요.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남들 하는건 다 하고 사는 저는 와인을 참 즐겨 마시는데요 (그죠? 왜 아니겠어요?), 그 와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지를 보고, 설명을 듣고 나니까 참 뭐랄까, 그 과정의 숭고함이 느껴지면서... 얼른 와인을 마셔 버리고 싶었달까요?
저 오크통에서 숨을 쉬며 저에게 마셔질 날을 기다리는 액체들의 습기는 참 향기로웠어요. 그 향만으로도 벌써 취하는 것 같았답니다.
이어진 테이스팅에서 맛 본 저댁 와인들은 일단 참 맑았고요. 주변의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이 우도 산호 백사장 모래알 같은 방울로 숙성되어 이탈리아 북부 산골 마을의 뜨거운 한 여름의 상큼함을 입천장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며 전해 준다고 하면 충분 할까요? 제가 워낙 와인 테이스팅 버진이라 들뜬 기분도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좋게 느꼈을 수도 있기는 있겠네요. 아무튼 저는 매그넘 한병 사서 어머니 보내 드렸습니다.
'이런건 뭐하러 사 쓸데 없이? 샤넬 빽이나 하나 사서 보내라니까.'란 대답을 들었어요, 역시나.
저는 시슬리의 '시슬랴'(아니, 그거 왜 그렇게 비싼 겁니까?)를 열아홉살 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사준 이후에 단 한번도 엄마한테 뭐 선물하고 좋은 소리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루이비통 빽을 갖다 사줬을 때도 '이렇게 큰 거(2001년에 큰 빽이 트렌드라고 하도 주변에서 지랄들을 해서)를 뭐, 장바구니 하라고?' 이런 소리나 들어야 했죠. 울엄마는 취향이 확실한 분이기 때문에 그 가방은 장롱으로 직행, 단 한번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며느리 준다니까 루이비통 빅빽에 관심있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이곳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간 다른 와이너리입니다.
저분은 저의 2011 결산에 꼭꼭꼭 들어 가셔야만 하는 제 2011 최고의 웨이터님이십니다.
저 식당의 메뉴는 주말마다 바뀌는데요, 저분은 세상에 메뉴를 아예 통째로 다 외우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주문은 메뉴판도 없이 대화로 이루어 집니다. 일단 저분이 오늘 가능한 것들을 좌롸롸롸롹 설명을 한번 쭉 하시면요, 친구들이 그걸 듣고 상의를 하기 시작 하데요. 그 와중에 저분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메뉴를 결정 합니다. 그리고 각 코스에 맞는 자기네 와이너리 와인도 추천해 주시고요.
자기가 일하는 식당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는 '알바생'들에게 가끔 '이거 맛있어요?' 물어 봤다가 우물쭈물 대는 알바생의 표정 때문에 오히려 미안머쓱 해졌던 경험들 누구나 한번쯤 해보셨을텐데요, 참말로 웨이터 역시 전문가는 다릅니다. 알바생을 뽑더라도 영리한 사람들을 뽑아 최소한 한번씩이라도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을 맛보게 하는 정성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 댁의 직업이 정말 댁에게 소중한 것이라면요.
너무나 완벽한 식사 경험이었으므로 역시나 완벽했던 저 집의 음식 사진을 첨부합니다.
다이어트 중인 분들은 여기 까지만 읽어 주세요.
.........................절취선........................저 경고 했습니다................................미워하지 마세요...............................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정말정말 좋았던 것은 선자 덕분에 밀라네제 친구들을 여럿 사귀고, 그들이 날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제 또래인 저 친구들이 이 음식 다음에는 어떤 치즈를 먹고 어떤 디저트를 먹어야 할 지를 짚어주는 대목에서 였어요. 그 다음에는 그라빠가 좋을지 리몬첼로가 좋을지, 그리고 에쓰프레쏘로 마무리 할지 그만 할지를 물어 보더이다. 선조들이 이룩한 풍요로운 음식문화를 익스트림하게 즐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솔직히 부러웠어요.
옹! 너 여기서 뭐하냐?
탐 알라이 와 믕?
밀란, 플로렌스, 로움, 내이플스... 이런 영어식 발음은 우리 이제 잊기로 해요. 내고향 서울이 쎄울이 아닌 것처럼, 밀라노는 밀라노! '밀'은 짧게, '라'에 힘을 주어 '라아' 하며 살짝 끌어주며 '아'에서 반단조 꺾어 바로 '노' 하는 겁니다. 자기 도시의 이름을 딱 그렇게 노래하듯 부르며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사는 권양
와락 껴안고 양볼에 입맞춤을 하는 이탈리아식 인사로 우린 다시 만났습니다.
우린 지난 세기말 마지막 해에 '레이버스유니온' 이라는 유령단체를 조직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당시 거의 국내 유일의 전자음악 싸이트였던 '테크노 게이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레이브 파티를 만들자며 누군가 들고 나왔고 (누구게요?), 고작 열여덟살 짜리의 선동에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와 모든 것이 공짜인 비영리 파티를 만들고, 파티를 즐기고 깨끗하게 헤어지는 아름다운 경험을 나누었죠. 선자는 그때 저와 함께 가장 어린 멤버였고요.
서로 제 삶을 사느라 우리는 한참이나 만나지 못했는데요, 그런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서로 모르는 서로의 이야기들이 많이 쌓여 할 얘기가 넘쳐서 좋았습니다.
선자는 제가 느무느무 좋아하는 물소젖 생 모짜렐라 볼을 내어 저를 반겨 줬습니다.
Negroni Sbagliato
저 네그로니는 다른 곳들의 네그로니와는 달리 진 대신 스푸만떼를 넣어 만든 '바 바쏘'의 씨그니쳐 칵테일입니다. 아주 유서깊은 바고요, 저 뒤에 달력 보시면 아시겠지만, 빈티지를 위한 빈지티가 아닌- 뭐,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빈티지랄까요? 이 네그로니에 들어가는 중요한 재료인 깜파리 역시 밀라노에서 발명되어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리쿠어 되겠습니다. 이 여행 뒤에 저는 언제나 찬장에 깜파리를 구비해 놓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달콤 쌉싸래 하면서 강렬한 붉은 색으로 칵테일의 풍미를 짙게 하는 멋진 액체.
저는 이 액체를 격하게 사랑하게 된 나머지 어느 순간 제가 '뜨거운 남쪽의 한낮, 하늘은 쌔파랗고요, 해변의 노천 바에서 갓 짜낸 샛노란 오렌지 쥬스를 얼음을 채워 목이 긴 잔에 따라 놓고 그 위에 쵹 뿌린 깜파리' 같은 사람인 것 같다는 망상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파브리치오와 선자의 아름다운 메뉴 정하기 시간
여기 이 아름다운 커플을 보십시오.
저는 이들이 매 식사시간 저렇게 메뉴를 보며 서로 고민하고, 의논하고, 주문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아, 내 친구 너무 예쁘게 잘 살고 있구나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들의 무궁무진한 먹거리와 조리법에 자신의 오늘 기분, 내면의 목소리, 평소의 기호를 퍼즐 맞추듯 완벽하게 조율해 내는 것이 바로 '주문'이더라고요. 사실 그건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유독 그것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이탈리아에서라면 얼마든지 까다로워져도 좋습니다. 더 까다로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개인일수록 더욱 더 개성있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입니다.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왜? 왜? 왜?' 이런 질문도 참 많이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탈리안들의 식탁에서는요.
그러니까 '아무거나'라고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눈 나라에서 내려 오자마자 또 눈
밀라노에 오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파브리치오의 절친들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이탈리안 알프스로 스노보드를 타러 갔습니다. 이것도 복이지라. 첫 보딩은 노르웨이에서, 두번째는 알프스에서. 2000-3000M 높이에서 내려오는 코스들도 있는데요, 그냥 뭐 저에게는 그 높이가 실감이 안나더라고요. 어릴때부터 탔다는 파브리치오와 그의 친구들은 2000M 넘는 곳에도 올라 가던데, 저도 어릴때 부지런히 배워 놓을걸 하면서 스키캠프라면 질색 했던 어린 시절을 처음으로 원망했습니다. 제가 발 시린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 해서요.
초보급도 안되는 제 주제에 감히 빙질 비교를 하자면요, 역시 노르웨이의 눈이 훨씬 부드럽고 푹신했습니다. 이때는 이미 2월 중순 무렵이라 이쪽 지역의 눈은 좀 거칠어진 시기였다는 것은 감안해 주세요.
산장에서 마시는 찐한 에쓰프레쏘의 맛이란
에쓰프레쏘를 처음 마셔본 열여섯의 그 겨울, 그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기차를 잘못 타도 한참 잘못 타는 바람에 가게 된 헝가리의 외딴 시골역에서 였어요. 역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날씨는 사람을 잡을듯 매섭게 추웠습니다. 다음 기차는 아직도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요. 간이역이라 추위를 피할 곳이 없었던 저는 역무원 누나에게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 눈동자를 만들어 보여주고 (열여섯이었다니깐요) 다행히 역무원 사무실 안에 들어가 난로를 쬐며 기차를 기다릴 수 있게 됐죠. 후덕한 풍채의 역무원 누나는 흰 콧수염이 난 다른 역무원 할아버지와 상당히 거친 액센트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 봅니다. 저는 씩 웃었어요. 그러자 그녀는 '까페?' 물어 보았습니다. 순진했던 저는 두번 거절 끝에 달콤한 내고향의 다방커피를 떠올리고는 백기를 들고 '예쓰, 플리즈' 하고야 말았어요.
잠시 뒤 그녀가 커피를 건네 왔습니다.
모카포트로 갓 뽑은 쌔까만 커피를요.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앜! 이게 뭐야?!
그 아득함이란, 그 충격과 공포란!
누나는 저를 너무나 인자한 눈빛으로,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정말 뼈를 깎는 심정으로 거짓 웃음을 지어 보여야만 했습니다. 제게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는 없었으니까요. 한잔을 천천히, 아니, 이건 더 고통 스러우니까 약간 식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원샷 했습니다. 약이다 생각하고 마셨던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제가 어찌나 위장을 잘 했던지 급기야 누나는 거절할 틈도 안주고 웃으며 한잔을 더 따라 주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카페인 하이'라는게 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손이 부르부르 떨리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저도 모르게 다리를 후르르르 떨고 있었죠.
...그랬던 제가 이제는 이사 갈때도 에쓰프레쏘 만드는 기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네요. 인생 참.
이탈리아에서는 커피 하면 대부분 저 에쓰프레쏘를 가리킵디다. 대개 바에 서서 한잔 쨘 마시고 카페인 충전하여 엉덩이에 힘 빡 주고 일상으로 활기차게 돌아 가더군요. 식권처럼 여러장씩 에쓰프레쏘 쿠폰을 파는 까페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는 또 동네 아저씨들이 바에 기대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걸고 참견하고 그런 화기애매한 거시기.
남자친구는 요리하고 여자친구는 구경합니다.
'요리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우월합니다. 이런 풍경은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한국 남성 여러분들 부엌 들어가도 꼬추 안떨어져요. 그거 다 뻥이에요. 엄마들이 요리하는 거 재밌으니까 못하게 한거임. 오히려 쟤네들 신체 구조를 생각하면 우리는 부엌에 좀 더 자주 드나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안해보신 분들은 해보세요. 재밌습니다.
짜짠!
파브리치오네 산장 주방에서 마씨모가 자기네 '페밀리 레써피'대로 만든 이 파스타 좀 보세요. 여자친구인 바바라와 같이 저 동네 시장에 나가 사온 그동네 특산 버섯과 최소한의 재료 만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냈네요. 맛이요? 훌륭한 버섯은 열 와규 안부럽죠. 저는 아주 접시를 혀로 싹싹 핥았습니다. 따로 설겆이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 였어요. 아, 또 먹고 싶네요.
Museo del Novecento
이곳은 삼성 신제품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식으로 설명 하자면 '테이트 모던에 대한 밀라네제들의 대항마' 노베첸또 뮤지엄입니다.
격변의 1900년대, '예술'이라는 것이 좀 더 아리송한 면모로 한바탕 변태한 그 시기에 이탈리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저 때만 해도 개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밀라노선 만나는 사람마다 노베첸또 가봤냐고 물어보곤 했던 '잇 뮤지엄' 되겠어요.
컬렉션은 물론 훌륭하고요, 그 유명한 밀라노 두오모를 좀 더 색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게 있으면 바로 입으로 이야기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활기는 뮤지엄 안에서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분위기는 그야말로 왁자지껄 합니다. 뮤지엄 같은 데 가면 괜히 불편하고, 기침만 해도 죄인이 될 것 같다거나 이런 걱정은 여기서는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와인 테이스팅!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습니다 와이너리 방문.
-파브리치오가 밀라노에서 하고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한 제 대답이었어요.
마침 그도 와인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흔쾌히 저의 부탁을 듣고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와이너리 몇군데를 둘러보는 와인 테이스팅 트립을 계획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일 모스넬' 이라는 와이너리로, '프란챠코르타' 품종의 스파클링 와인이 유명한 곳이었어요.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남들 하는건 다 하고 사는 저는 와인을 참 즐겨 마시는데요 (그죠? 왜 아니겠어요?), 그 와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지를 보고, 설명을 듣고 나니까 참 뭐랄까, 그 과정의 숭고함이 느껴지면서... 얼른 와인을 마셔 버리고 싶었달까요?
저 오크통에서 숨을 쉬며 저에게 마셔질 날을 기다리는 액체들의 습기는 참 향기로웠어요. 그 향만으로도 벌써 취하는 것 같았답니다.
이어진 테이스팅에서 맛 본 저댁 와인들은 일단 참 맑았고요. 주변의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이 우도 산호 백사장 모래알 같은 방울로 숙성되어 이탈리아 북부 산골 마을의 뜨거운 한 여름의 상큼함을 입천장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며 전해 준다고 하면 충분 할까요? 제가 워낙 와인 테이스팅 버진이라 들뜬 기분도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좋게 느꼈을 수도 있기는 있겠네요. 아무튼 저는 매그넘 한병 사서 어머니 보내 드렸습니다.
'이런건 뭐하러 사 쓸데 없이? 샤넬 빽이나 하나 사서 보내라니까.'란 대답을 들었어요, 역시나.
저는 시슬리의 '시슬랴'(아니, 그거 왜 그렇게 비싼 겁니까?)를 열아홉살 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사준 이후에 단 한번도 엄마한테 뭐 선물하고 좋은 소리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루이비통 빽을 갖다 사줬을 때도 '이렇게 큰 거(2001년에 큰 빽이 트렌드라고 하도 주변에서 지랄들을 해서)를 뭐, 장바구니 하라고?' 이런 소리나 들어야 했죠. 울엄마는 취향이 확실한 분이기 때문에 그 가방은 장롱으로 직행, 단 한번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며느리 준다니까 루이비통 빅빽에 관심있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결정의 순간
이곳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간 다른 와이너리입니다.
저분은 저의 2011 결산에 꼭꼭꼭 들어 가셔야만 하는 제 2011 최고의 웨이터님이십니다.
저 식당의 메뉴는 주말마다 바뀌는데요, 저분은 세상에 메뉴를 아예 통째로 다 외우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주문은 메뉴판도 없이 대화로 이루어 집니다. 일단 저분이 오늘 가능한 것들을 좌롸롸롸롹 설명을 한번 쭉 하시면요, 친구들이 그걸 듣고 상의를 하기 시작 하데요. 그 와중에 저분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메뉴를 결정 합니다. 그리고 각 코스에 맞는 자기네 와이너리 와인도 추천해 주시고요.
자기가 일하는 식당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는 '알바생'들에게 가끔 '이거 맛있어요?' 물어 봤다가 우물쭈물 대는 알바생의 표정 때문에 오히려 미안머쓱 해졌던 경험들 누구나 한번쯤 해보셨을텐데요, 참말로 웨이터 역시 전문가는 다릅니다. 알바생을 뽑더라도 영리한 사람들을 뽑아 최소한 한번씩이라도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을 맛보게 하는 정성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 댁의 직업이 정말 댁에게 소중한 것이라면요.
너무나 완벽한 식사 경험이었으므로 역시나 완벽했던 저 집의 음식 사진을 첨부합니다.
다이어트 중인 분들은 여기 까지만 읽어 주세요.
.........................절취선........................저 경고 했습니다................................미워하지 마세요...............................
날 잡아 잡숴~
이리 와.
우리 한번 녹아 보자구
이렇게?
치이이즈!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정말정말 좋았던 것은 선자 덕분에 밀라네제 친구들을 여럿 사귀고, 그들이 날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지켜보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제 또래인 저 친구들이 이 음식 다음에는 어떤 치즈를 먹고 어떤 디저트를 먹어야 할 지를 짚어주는 대목에서 였어요. 그 다음에는 그라빠가 좋을지 리몬첼로가 좋을지, 그리고 에쓰프레쏘로 마무리 할지 그만 할지를 물어 보더이다. 선조들이 이룩한 풍요로운 음식문화를 익스트림하게 즐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건데...솔직히 부러웠어요.
아니 이게 누구야?
옹! 너 여기서 뭐하냐?
탐 알라이 와 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