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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나의 2011 [4]

우리 옹


싸왓디, 옹!
옹입니다. 이름이 옹이에요. 한자 왕을 태국식으로 읽으면 옹이 된답니다. 저의 태국 동생입니다.

2009년 군대를 제대하고 별 거 없이 지내던 차에 샹하이와 방콕을 오가며 살던 라오찐이라는 제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었어요. 그 친구는 워낙 서울을 오래 떠나 있었으니까 서울을 잘 몰랐고요. 그런데 마침 옹과 다른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오게 됩니다. 옹과 라오찐은 샹하이에서 쭝궈말 어학당 다니다 만난 사이였답니다. 라오찐은 저와 허형이라는 제 친구더러 딱 하루만 얘네랑 만나서 같이 놀아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만났습니다.

저야 뭐, 스무살때 처음 태국에 가본 이후로 그나라에 홀딱 반해서 적어도 일년에 한두번은 태국에 갔었을 만큼 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태국 친구들이라니 아주 흔쾌히 오케이 했습니다. 그러고 하룻밤 같이 놀아 보니까 아니 이친구들이 참말로 괜찮은 친구들이더라고요. 저는 날마다 딱히 할 것도 없는 시기였으니까 아예 이친구들이 서울에 머물렀던 닷새 내내 합숙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옹과 폰이라는 또 다른 친구는 서울에 홀딱 반해 이틀을 더 머물기도 했어요.

언제나 특히 죽이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게 있는 거더라고요. 얘랑 저랑은 얼굴도 많이 닮아서 (물론 제가 더 잘 생긴건 저도 인정 합니다.) 사람들이 진짜 형제냐고도 자주 물어보고 해서 이래저래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급기야 옹은 어느 때부턴가 절더러 한국말로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저도 그냥 얘가 동생 같더라고요. 그러나 형이라고 부르면서 지 수틀리면 한국말로 욕할 땐 죽이고 싶었죠. 괜히 한국말 욕을 재미로 신나게 가르쳤다가 서울서 친한 누나가 방콕에 놀러 왔을 때 이 자식이 그 누나더러 농담이랍시고 자기가 아는 욕을 총동원해 집약한- '야 이 씨발 좆 같은 씹창 진상 누나야.'라는 완벽한 문장을 말하는 바람에 저는 순간 자제력을 상실한 그 누나한테 싸다구도 한대 맞은 적 있습니다. 가르친 놈이 더 나쁘다고요. 눈물눈물이모티콘 세개

아무튼 한달 후에 저와 다른 친구 둘이서 태국에 답방을 했을 때는 아예 옹네 집에서 다같이 합숙을 했습니다. 무려 한달 동안이나요. 그러면서 옹네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 하고도 가족처럼 친해졌죠. 그 이후에 두달간 저는 유럽과 이스라엘을 더 여행했고요,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경유지 태국에서 서울행 티켓을 버리고 짐을 빼 눌러 앉게 됩니다. 그때는 딱 반년만 살아보자 했는데, 아시다시피 그게 2년 반이 됐네요.
옹 덕분에 저는 태국에서 정말 수많은 친구들을 소개 받았고,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매끄럽게 그 도시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옹은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아버지 사업 물려받는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의 아버지는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전도 유망한 태국의 중견 기업을 자수성가로 일군 분이시고, 걔는 사무실에만 착실히 앉아 있으면 장래 창창, 두둑한 삶을 살 수 있는 뭐 그런거 있잖아요. 그런데 하필 저를 만나서, 정신이 멍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무실에나 앉아 있으려고 태어난 건 아닌 것 같다'는 둥, '지루해서 미쳐 버릴 것 같다'는 둥, 누가 들으면 그야말로 호강에 초쳐먹는 소리들을 하기 시작 하더라고요. 옹은 '월페이퍼'를 서점에 가서 매달 사서 보고요, 제품 디자인 쪽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자기는 장남이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 받아야 하니까 그냥 집에서 원하는데로 경영을 배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뭐랬게요?

'관둬.'
'야, 너네 아빠가 부자지 너가 부자냐?'
'그렇게 살다 죽을거야?'
'재미도 없는 걸 어떻게 하고 앉아 있어?'
옹네 아버지가 아시면 맞아 죽을 이런 소리들을 딱 붙어 다니면서 약 일년에 걸쳐 끈질기게 했습니다. 브레인 워시라고 할까나.

그런데 세상에 저 우유부단하고 엄마아빠 말씀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애가 진짜로 결국 아빠 회사를 박차고 나옵디다.
아...저 좀 무서웠어요. 내가 지금 얘한테 무슨 짓을 한건가? 쟤네집 '패밀리 디너'에 초대 받아서 아버지 어머니도 엄청 자주 뵙는데, 그분들께 죄송해서 어쩌나.

옹은 태국에서 서너달 놀더니 정말로 밀라노 디자인 학교(마랑고니 말고 거기 요즘 유명한 데 있잖아요,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에 신입생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태국 중산층 자녀들은 대개 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마스터 디그리를 따러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 오는 것이 관례인데요, 옹의 경우는 자신의 전공과 전혀 거리가 먼 '프로덕트 디자인'을 선택해 대학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태국에서는 이것이 굉장한 파격이었고요, 특히 옹처럼 장래가 보장된 친구가 이런 결정을 한데에 옹의 친구들도 엄청 놀랐습니다. 그 주변의 일대 사건이었어요.

사실 저는 이탈리아어는 문법이 복잡해 배울수록 더 어려워 진다는 이야기도 여러번 들은 터라, 언어 배우는 데 힘도 들고 그러니까 남들처럼 쉽게 영국이나 미국에 가라고 꼬드겼는데도요, 사람이 한번 마음을 먹으면 참 독해 지데요.
안그러던 애가 막 갑자기 저돌적이 돼서 몰고 나가니까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책임감도 느껴졌고요.
그런데 가서 사는 걸 보니까 

이런 좋은 친구들도 많고


알아서 잘 살고 있더라고요.

대개 태국사람들이 서양으로 유학을 가면 태국 커뮤니티 안에만 있다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느 나라 유학생들이랑 좀 비슷해요.
그런데 옹은 참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친구들을 참 많이 만들어 놨더라고요. 약 너다섯달 만에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옹은 제가 살면서 본 사람들 중에 가장 단순한 사람 중에 한명이에요. 뭔가 심각한 상황에 있더라도 웃긴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꼭 영구처럼 막 웃습니다. 세상 시름을 다 잊은 것 마냥요. 문제가 있을땐 더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에 한번 쾅쾅 웃고 풀어 버립니다. 그리고 참 재는게 없어요 애가. 사람 처음 만나서 머릿속으로 셈하는 사람들은 얼굴에 그거 딱 보이는거 아시죠? 그런데 옹은 그런게 없더라고요. 아마 그러니까 저같이 좋은 친구도 만났겠죠. 흐흐흐

레이디 가가 백명 있는 클럽


세상에 저처럼 옷 안 사입는 젊은이도 드물텐데 저는 희한하게 패션 이벤트들이 제 길 앞에 짠 나타나 주는 경우가 참 많아요.
바로 이날처럼요.
이곳은 아는 분은 다 아시는 밀라노의 전설적인 '디스코' (이탈리아에서는 클럽이라고 하면 어리둥절 해 합니다. '디스코'라고 해주쎄요.) '플라스틱'인데요, 그 유명한 밀라노 패션위크 중이라 한 '레이디 가가' 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유명한 모델들도 꽤 있었다는데 제가 군대 다녀오고 요즘 얼굴들 업데이트가 잘 안돼서...

밀라노 클럽에서는 입구에서 '물관리'를 엄청 철저하게 하는데요, 도어에 아는 사람이 없거나 행색이 수더분 하면 한시간씩 줄을 서도 클럽에 들어가 볼 수 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 옷차림들을 지켜 보면 한눈에 딱 띄게끔 지랄지랄들로 입고 왔어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찰진 곳입니다.
 

좁은 문


여기는 라운지 같은 공간인데요, 좀 늦은 시각에는 아예 활짝 개방을 하면서 일부러 이른 시간에는 문을 저렇게 딱 닫아놓고 얄미울 정도로 물관리를 합니다. 저 밖에는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좀 봐달라고 물관리 담당 프로모터를 애타게 부르죠. 그러면 저기 페도라 쓴 양반이 저 조그만 창으로 (뿔테 안경은 꼈지만 코에 그냥 걸쳐 있고 턱을 당긴 상태로 눈동자에 힘 딱 줘서 짓는 그 피키한 표정으로요) 내다 보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딱 들여 보내요. 얄짤 없습디다. 일단 클럽 안에 들어와도 또 저런 난리를 겪어야 한다니 보면서 좀 안쓰럽더라고요. 들어가도 사실 별 것도 없는데.

저요?
보세요, 들어와 있잖아요.
왜인지는 저도 그게 미스테리.
아마 제가 클럽랜드에 제 젊음을 다 바친 것이 딱 보면 보이나 봅니다. 주파수가 맞는 달까요?

밀라노는 명성에 비해 밤이 상당히 지루한 도시에요.
클럽들도 생각보다 별로고요, 요즘 서울 클럽들이랑 비교해 보면 지난 세기의 클럽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 춤 추는 것도 10년 전이나 그대로고요. 그래서 클러빙이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분들이 가시면 좀이 쑤셔 약간 돌아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대개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면 쇼핑에 꽂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만 해도 '아, 부띡이라는 데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로구나' 하는걸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깨달았으니까요. 엄마에게 문제의 그 루이비통 빅빽을 사준 곳도 바로 밀라노였습니다. 유유 

단, 탕진할 여유가 있으면 지루할 틈 없는 환상의 도시 되겠어요. 


나 멋있지?


저 신사분이 저렇게 한껏 차려입고 나오셔서 한참이나 쳐다보고 계셨던 창 너머에는 너무나 화사한 초록색 벨벳 쟈켓이 걸려 있더군요.
밀라노에서 패션은 평생에 걸쳐 완성해 나가는 매너 같은게 아닌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면 나이가 많은 분들일 수록 더 멋있고, 옷도 진짜 으아! 너무 잘 입거든요. 젊은이들이 대개 머리도 떡진 머리에다, 진에 티셔츠(패션의 본고장이라지만 아직도 엠포리오 알마니 로고 크게 박힌 티셔츠 입고 다니는 애들 상당히 많아요) 차림인 반면 어른들은 어우 무슨 옷이 정말 몸에 챡 감겨 있는데다, 헤어며 피부며 젊은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길 가다 너무 멋있어서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분들은 남녀 마찬가지, 대개 50대 이상 어른들이에요.
그게 이탈리아 사회 구조가 먼저 시작한 어른들이 다 가져 버리는 구조라 젊은이들은 딱히 어디서 큰 돈 벌어 먹을 데도 없고 그래서 그런 거라는군요.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임금은 낮고 생활비는 높아서요, 사실 평범한 젊은이들이 전문직에서 아무리 일해봤자 디젤에서 쇼핑하는 것도 버겁답니다. 그러니 각종 부틱들에서 카드 쭉쭉 긁은 젊은이들은 대개 중동 부호들(그분들 쇼핑할 때는 프라다 매장도 그분들 만을 위해 이층은 막아놓고 못 올라가게 하더군요)이나 아시아인들이죠. 

쯔쯔 이탈리안 바보 젊은이들, 엄마한테 사달라 그러지. 후훗 (이탈리아도 있는집 애들은 빨간색 페라리도 타고 다니고 그래요. 테일러드 수트 입고요, 딱 '리플리'에 나오는 애들 처럼요.)

서구식 '독립'은 다 허상입니다. 계획하고 있는 뜻이 있다면 엄마아빠 건강 하실때 적당히 더 갖다 쓰세요. 괜찮아요.
가고 싶은 곳에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이게 엄청나게 티켓 구하기 힘든 빅매치였다는데요, 축구를 참 좋아하는 노르웨이 친구 덕에 보게 됐습니다. 인터넷으로 저도 티켓을 알아 봤었는데 다 매진이었거든요.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경기장에 직접 가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여분의 표가 있답니다. 나중에 축구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이경기 표를 고작 25유로에 샀다니까 엄청 놀라더라고요.

아, 이탈리아에서 축구 보러 가실 때는 여권 꼭 꼭 챙겨 가세요. 티켓에 이름을 프린트 하고 나중에 입구에서 대조 합니다. 왜인지는 저도 몰라요. (긴장감 조성?)

인터밀란 VS 바이예른뮌헨.
빅매치였던지라 저 유명한 싼씨로 경기장이 꽉 찼습니다. 조용조용한 유럽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저런 스펙타클한 광경을 보니 일단 신이 났어요. 제가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었지만 저 많은 사람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니까 엄청나게 흥분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무턱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방방 뛰고 아드레날린을 좀 뿜었습니다. 딱히 밤에 할 것 없는 이탈리아-유럽 젊은 남자들은 축구라도 없으면 삶이 정말 무료할 것 같다는 생각 했어요. 한국처럼 날마다 밤 꼬박 세워 술 마시고 노는 나라가 세계에 몇 없기도 하지만.

이날 특이했던 것 중에 하나는요, 평상시에 그렇게 어딜가나 떠느는 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축구를 볼 때만은 참 조용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경기가 중단되는 타이밍에만 다같이 일어나서 한마디씩 소리치고 다 다시 앉데요? 저 경기장에는 대형 전광판이 있지만 거기에다 경기 중계를 안해주기 때문에 경기 흐름을 보려면 정말 집중해서 보기는 해야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모두 앉아서, 무슨 연극 보듯 축구를 보는 광경은 차라리 '관전'이라기 보다는 '감상'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 경기장에서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담배도 피우고 다른 것도 피우고 그럽니다. 괜찮은가봐요. 
여자 화장실 아주 더럽고 불편 하다니까 맥주 드실때는 감안해서 드시고요.

경기는 뮌헨이 이겼지만 "기대했던" 폭동은 없었습니다. 몇몇 술 취한 홈팬들이 홈관중 석에 있던 뮌헨 관객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소소한 장면은 있었지만요.

옹네 동네 와인가게


이탈리아에 있는 한달여 동안 와인은 거의 날마다 한병씩 마셨어요. 이탈리아에선 '비노'라고 한답니다.
저기서는 5-10유로만 줘도 상당히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가 있더라고요. 그 좋은 와인들이 그렇게 싼데 마셔야죠 마셔야죠. 마시는 게 남는 거에요.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에는 좋은 와인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탈리아는 자연 환경적인 요건상 프랑스만큼 대량생산을 하지 않고 딱 자기들 마실 만큼만 만들어서- 좋은건 또 자국 내에서 거의 다 소비를 한다는군요. 이런건 참 멋지죠?

이전의 그 와인 테이스팅 트립 마지막에 우리는 파브리치오가 가장 좋아 한다는 와이너리를 찾아 갔는데요, 거기서 파브리치오가 묻습니다.
'난 댁의 와인을 참 좋아해서 밀라노에서 아무리 구해 보려 해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했더니 주인 양반,
'저는 조금만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고 싶지, 크게 유통할 욕심은 없습니다. 생각나면 또 여기로 찾아와 주세요.'
헉!!!
이탈리아에는 이런 괴짜 분들이 참 많이 살고 계시답니다.

저 와인가게 주인분도요, 일단 들어가면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거냐 부터 물어 봅니다. 그래서 생선이라고 하면 이런거, 양고기라고 하면 저런거를 와이너리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의견을 곁들여서 한 서너개씩 추천해 주세요. 물론 제가 원하는 가격대도 감안해서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마디로 할 수 있는 것도 길게 늘려 말하는 재능이 풍부 해서요, 제 앞에서 먼저 와인을 사간 제 또래의 청년은 저분과 5분 넘게 이야기 하더니 와인을 한병 고르더라고요.

차이나타운!


밀라노의 차이나 타운입니다.
오엠쥐, 저는 이 차이나 타운 규모를 보고 대단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굉장히 규모가 컸던데 한번, 그리고 이 지역 예산으로 도로며 건물들을 정비해서 밀라노의 어떤 구역 보다도 깔끔했던데 한번 놀랐습니다. 사진에는 도로 정비작업이 한창인데요, 저게 다 완성되면 훨씬 더 깨끗해 지겠지요?

쭝궈를 이탈리아에서는 '치나'라고 하는데요, 이 치나파워가 이탈리아 안에서도 대단해서 이제는 우리가 'Made in Italy'를 100%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쭝궈 사람들이 이탈리아에서 만든 물건도 어쨌든 Made in Italy가 되는 거니까요. 일단 굉장히 많은 쭝궈 분들이 이탈리아에 이미 건너가 있고요, 양지에서, 음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를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이탈리아 영화 <고모라>에 디스토피아 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이탈리아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이제 이탈리아가 쭝궈에게 돈 빌린다죠?
(민감한 사안에 '물론 일부겠지만' 클리셰 삽입하는 센스!) 아시아 사람들을 뚱 쳐서 '치나치나'하면서 대놓고 무시하던 이탈리아로서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습니다. 
나라는 망해가도 그나라 사람들의 취향은 인류 최고 수준이고, 하이패션이나 호사품의 주요 생산지라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
온 국토 해안에 요트는 떠있어도 돈은 빌릴 지언정, 그 빌린 돈으로 하이패션과 럭셔리를 생산한다니 이거 저만 이상하게 보는 거에요? 
하아,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예측하기 힘든 쪽으로 흘러 갑니다. 

제가 *유일하게, 가장 신뢰하는 노랑색입니다.


그래도 이탈리아가 망해서 호사 산업이 무너지면 우리가 아쉬울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우린 베스파도 타야 하고, 돌체&가바나 버클 벨트도 차야 하고 (읭?), 페라가모 일수 가방도 들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읭읭?)
게다가 넘사벽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도 이탈리아 출신이죠.

수줍게 고백 하자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산 호사품은 바로 이 '아쿠아 디 빠르마' 되겠어요.
저는 제 몸에서 향이 나는 것이 극도로 불편해서요, 데오도란트 이외에는 될 수 있으면 향이 있는 어떤 제품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오도란트만 좀 좋은 걸 써요. 제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일년간 제 방에 살았던 엄친딸 누나가 그동안 잘 지냈다며 이사를 가면서 노란색 원형 박스에 담긴, 위용도 당당한 아쿠아디빠르마 풀 기프트 세트를 선물로 주고 갔는데요, 원래 호사라는 게 모를 땐 별 필요도 없던 것이 한번 좋은 맛을 보면 되돌이킬 수가 없는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 다음 부터는 군대에서도 아쿠아디빠르마만 썼습니다. 후훟

한국에는 들어가 있지만 좀 비싸고, 태국에는 아예 없고 해서 밀라노 간 김에 좀 사재기 했습니다...데오도란트 두개, 샤워젤 하나 사놓고 사재기 했다 카니까 좀 찔리네예.

옹네 집 1층 까페


옹이 낮에 학교 가면 저는 일층에 내려가 저 바리스타 아저씨한테 챠오! 하고 에스프레쏘 한잔에 브리오셰 하나 시켜놓고 아저씨랑 수다 좀 떨다가 거리로 나가 이리로 저리로 막 걸어 다녔습니다. 옹네 집은 두오모와 가까운 밀라노 중심부라 여기저기 재미있는 가게들도 많아서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 했어요.
 

이렇게 하우스 파티에도 여기저기 갔고요

 
이탈리아에선 하우스 파티가 디스코 가는 것 보다 훨씬 더 재밌는 경우가 많아요. 옹네 친구네 집 두평짜리 부엌에 이렇게 따닥따닥 붙어 서서 각자 준비해온 술을 나눠 마시고 떠들고 놀았습니다. 밀라노에서는 워낙 다들 종종 하우스 파티를 하니까 이웃들도 암묵적으로 자정까지는 좀 시끄럽게 떠들어도 서로 참아주는 분위기더라고요. 다만 자정이 넘어서도 지나치게 시끄러우면 이웃의 누군가가 노크를 하고요, 합의를 보고 조용히 하면 매끄럽게 넘어 가지만 그래도 떠들면 다음에 노크하는 사람은 대개 경찰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경찰이 오더라도 '알겠다, 우리 조용히 할게' 하면 경찰도 그냥 돌아 갑니다. 연행 그런거 없어요.

저 모짜렐라는 밀라노 있는 동안 한 백알 먹은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저 요리기능 있는 남자에요.
그래서 장 봐다 집에서 거의 날마다 한 두끼 요리해 먹었지요. 외식은 사흘에 한번 정도 했고요. 
아껴야 잘 살죠. (그러나 장을 이틀에 한번 봤다는 거시기.유유)
이건 제가 만든 '박모과 멋대로 오믈렛과 모짜렐라 볼스'.

옹 친구들 불러다 오징어 볶음도 해 먹이고요


외국 친구들 오징어 볶음 해주면 대체로 참 잘 먹습니다. 뭐, 아닌 애들도 있겠지요. 다만 저는 제가 그들 음식을 열린 마음으로 즐기듯이, 한국에도 꽤 멋진 음식들이 있으니 먹어 볼래 하는 순수한 접근 70%에, '컴 온, 너네 아직 한국 음식도 못 먹어 봤다고?' 하는 꽤 폭력적인 뉴욕식 접근 30% 정도를 섞어 어쨌든 뭔가 만들어서 다들 모인 자리 식탁에 깔아 줍니다. 

이번 여행 갈 때는 제가 일부러 한국산 한국라면을 싸가서 주로 술 마신 다음날 치즈랑 계란 넣고 마일드 하게 끓여서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그랬는데요, 그러면 애들이 눈 뒤잡아 까고 잘 먹습니다. 토마스네는 나중에 꼭 한국라면 한박스 부쳐 달라고 부탁 해서 라면 팔러 러시아 다니던 지모군이 저 대신 오슬로에 라면 한박스 부쳐 주기도 했어요. 고맙습니다 지모군, 자네는 복받을 걸세.
국경을 깨부수는 낭심 MSG의 전지전능한 수퍼 파워를 믿어 보세요.

살이 디룩디룩 쪘어요.


밀라노에서의 생활이 길어 지면서 저는 거의 거기에 눌러 앉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딱히 태국에 돌아 가야만 하는 중요한 일도 없었고, 거기서 아주 인갑답게 살면서 풍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저런식으로 좀 해먹고, (사람 체중이 두달만에 10KG 불어 나는게 정말 가능 하더군요.) 아끼고 (읭?) 그러면 태국에서 지내는 거나 크게 다를게 없겠더라고요. 왜냐면 태국에서는 아예 아끼지를 않고 펑펑 써댔으니깐요, 싸니까. 옹은 큰집에 살기도 하고, 나랑은 막역한 사이고, 렌트 좀 쉐어해서 내고 그러면...유럽으로의 이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 올랐죠.

그러던 어느날 트위터로 명모군이 '몬테풀치아노디아부르쬬' 품종의 와인을 자기가 좋아 한다고 뜬금없는 멘션을 보내 왔더군요.
그래서 써치를 해보니까 꽤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어요 거기가 또.
약간 심심해 지기도 한 차에 그분 약도 좀 올려드릴 겸, 모처럼 따뜻한 남부 이탈리아의 햇살을 쬐며 조국의 장래에 대해 생각도 좀 할 겸(밀라노 겨울 날씨는 우중충충 했어요.) 해서 차를 빌렸습니다.
넘넘 따봉 귀여운 피아트 500을요.



그리고 저는

지중해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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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쓰는 거 좀 더 많은 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