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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나의 2011 [6]

페페씨 댁에서 밀라노로 돌아오는 길에 사실 저는 '친퀘테레' 라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들을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밀라노 근처에 다다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만사 귀찮아진 저는 그냥 밀라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여행 첫날 오슬로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편도 티켓을 들고 간 저를 붙들고 한참동안 이것저것 질문하던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저에게 노르웨이에 몇일 동안 있을거냐고 물어 봤었습니다. 저는 길면 "보름" 정도라고 대답 했는데, 이미 그의 네배나 되는 기간동안 유럽에 머물렀군요. 페이스북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자기네 동네에는 안올거냐고 계속 물어 보기도 했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암스테르담도 론돈도 로마도 너무너무 가고 싶었죠 물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정도면 나 참 좋은 여행을 했다, 이번 여행은 이걸로 충분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충분했다는 쪽이 이겼습니다.
이번 유럽행에서는 티켓운이 잘 따라줘서 비행기 티켓도 적당한 가격에 구입을 했어요. 이때, 저와 옹 모두 맥을 쓰는 바람에 더 싼 티켓을 발견 하고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만의 자랑스러운 특급 보안기술 '엑티브엑스'와 '신한카드 안심결제' 때문에 결제를 제 때 못해 가장 싼 옵션이었던 -그것도 무려- 싱가폴 항공 티켓을 날리게 됐죠.

그거 아세요? 하필 맥 쓰는 사람들 주변엔 맥 쓰는 사람들만 많아서 저는 윈도우즈 피씨를 쓰려고 옹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한 뒤에 겨우 이스라엘 친구 알런의 '델' 노트북을 빌려 쓸 수 있었어요.

그친구 집에 공인인증서 담긴 USB를 들고 가서 그친구 노트북에 이것저것 엑티브엑스 깔고 있는데 참 너무너무 미안하고 제 자신이 수치스럽더군요. 그친구가 그때 제게 했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너는 370만원 짜리 노트북을 쓰면서 이런 것도 못 해?"
자랑스러워요 IT강국 대~한민국 짜작짝짝짝!

출국을 한 일주일 남기고 저는 그냥 하릴없이 지냈습니다.
여러번 갔었고, 3달 짜리 여행의 베이스로 꽤 길게 지내본 적도 있는 도시여서 밀라노 여기저기를 작별하는 마음으로 쏘다녔지요.
새로 생긴 곳들도 체키라웃 하는 의미에서 한번씩 가봤습니다.

불가리 호텔 시그니쳐 칵테일, 불가리


이런거 한잔 시켜놓고 불가리는 어떻게 해놨나 구경도 좀 하고요.
태국에서 좋은 호텔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엥간하게 잘 해놓은 데가 아니면 별로 큰 감흥이 없습니다. 불가리 호텔은 특별히 인상이 깊다거나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호화롭지도 않고 딱 그냥 작고 아늑한, 편안한 공간 이었습니다. 다만 밀라노에서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모던한 공간이 땡기는 날에는 이렇게 저처럼 바 정도 들러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음, 의외로 웨이터가 메뉴에 있는 칵테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고요, 저렇게 그냥 주는 주전부리들은 너무 짜서 눈알이 튀어 나올 것 같더군요. 감자칩은 하나만 집어 들어도 손이 마치 삼겹살 찍어 먹는 소금기름에 담근 것처럼 되더라고요. 그래도 명품이니까 좋은 분들은 어쩔 수 없고요.

다만 바텐더에게 술을 좀 쎄게 타달라고 했더니 진짜- 고작 저거 한잔 마시고 핑! 얼굴이 저 액체 색이 될만큼 쎄게 타줬던 것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토닉 좀 쎄게 말아 달라니까 노르웨이에서는 아무리 바텐더라고 해도 정해진 양 이상 알콜을 넣는 것은 주류법에 위반 된다며 정색하던 크루즈 라운지의 바텐더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보이세요? 2002!


페페씨 댁에서 사온 2002년산은 태국에 들고 갈 작정 하고 샀는데요, 결국 못 참고 따버렸습니다.
그래도 거의 10년간 저 병에서 저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 주었던 사랑스런 저 액체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리나센테 백화점 가서 잔도 좀 괜찮은 걸로 사고, 급히 이케아에 가서 디켄터도 사왔어요. 저 귀엽죠? 흐흐흐

옹네 집에서 저 조그만 테이블에 치즈며 이것저것 썰어다 접시에 담고, 하루에 한병씩 밀라노 주변에서 생산한 와인들을 사냥해다 마시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뭉크 박물관에서 본 뭉크씨 자화상에는 유독 와인이 자주 등장 했던것을 떠올리며, 뭉크뭉크한 기분에 젖곤 했습죠.

나의 2002년을 잔잔히 떠올리며 마셨습니다.
처음 땄을 때부터 와이너리에서 먹어본 2007년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묵직함이 솔솔 피어 오르더군요. 
평소에 달러 기준 $35 이상인 와인은 잘 고르지 않는 저라서요, 이날은 감상하는 마음으로 마음껏 즐겼습니다. 
굿바이는 멋지게!

젤라또!


이탈리아를 여행 하면서 제가 이탈리아어를 가장 그럴듯 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이스크림 가게 입니다. 이탈리아어는 알파벳을 소리나는 대로 읽어주면 되는데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대개 각기 다른 맛 앞에 작은 레이블로 이름을 다 써놓거든요. 이탈리아 말은 제가 스무살 때 '꼭 배워서 저 사람들 처럼 강력한 수다를 떨어 보겠다' 하는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박력있는 언어라, 고작 아이스크림 주문만 해봐도 뭔가 속이 후련해 지는 그런 거시기가 있어요.

물론 이탈리아에 아이스크림집이 만개가 있으면 그중에 9천9백개는 자기 집에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집마다 맛이 다 다른건 당연한 거고요. (거기도 맛 없는 집들도 있기는 있어요)
옹네 집 근처에 있는 이집도 마찬가지, 사진 속 저분은 론돈 가서 12년 살다가 2년전에 밀라노에 돌아와 부동산 일을 하다가 이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부동산에서 젤라떼리아로 넘어 왔냐고 묻자, 엄마가 밀라노 외곽에서 큰 젤라떼리아를 하셔서 아이스크림은 자기 인생이라고 하더군요. 맛도 솔찬히 있었땅께롱.

아이스크림 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먹을 때가 가장 귀엽더라고요.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은 문자 그대로 몇백년씩 된 곳들도 있는데요, 그앞에 가보면 애나 어른이나 할매나 할배나 할 것 없이 길에 서서 저 콘에 두세스쿱씩 뜬, 녹아서 질질 흘러 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혀로 열심히 조율해 가며 먹고 있어요. 할아버지와 손주가 그 앞에서는 똑같은 어린아이가 됩니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엄마는 샤넬빽 하나 사서 부치라고 하셨지만 못난 아들 저는 밀라노 두오모에 가서 촛불이나 하나 붙였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엄마 샤넬빽 백개 사주는 아들이 되어 있기를 기도...는 뻥이고요.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엔 클래식 차를 빌렸습니다. 이것도 뻥이에요. 차 예쁘죠? 기차역 앞에 서있던 차.


밀라노를 떠나기 하루 전, 저는 밀라노에 있던 내내 밀라네제 친구들에게 귀에 딱정이가 앉도록 들었던 친퀘테레에 다녀 왔습니다.
다음에 가자고 하기에는 좀 너무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쓱 다녀 왔어요. 이벼얼 여행으을~
제가 또 워낙 게을러서 꼭두새벽부터 길 나서고 이런 거는 일년에 몇번 못합니다.
게다가 하필 이날은 게으름을 피워도 너무 피운 나머지 다섯 마을 중에 딱 한군데, '베르나짜:Vernazza'만 둘러볼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밀라노나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도 물론 보셔야 하지만, 이런 비교적 덜 알려진 보석 같은 곳을 찾아서 자신만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면 너무 파워 블로거 같잖아!

아무튼 메모 해 두세요, 친퀘테레.
 

예뻐라


천천히 둘러 보는데도 서너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은 마을이에요. (하루에 도시 두군데씩 끊는 한국 배낭여행 선수님들께는 30분이면 충분할수도) 각 마을과 마을은 트레킹 코스로 이어져 있는 구간이 있어서 조금 힘을 들이면 걸어서도 이동이 가능 하답니다. '아 예뻐!'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 나와서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뻥 소리내 말해 버리고 싶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은 이곳에 가시면 되겠어요. 민박집들도 많으니 미리 알아 보시고요, 제가 못 다한 다섯 마을 구경을 아무나 대신 좀 해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좀 더 여유롭게 찬찬히 둘러 보시면 여러분의 지친 몸과 마음도 저 마을들처럼 차분해 질겁니다. (저 오늘 왜 이렇게 착하게 밖에 못쓰겠죠?)

'트레콜로리;삼색' 이탈리아 국기색 기억 나세요?


먹어야죠. 흐흐흐
빨강은 토마토, 하양은 물소젖, 초록은 바질+잣! 바닥에 깔린 것은 식감이 쫀득한 포카치아 되겠어요. 이 라구리아 지방에서 나는 바질은 이탈리아에서도 향과 질이 가장 좋기로 유명 하고요, 그래서 자연히 그 바질잎으로 만든 '페스토 소스', 다른 말로 '제노베제' 소스가 이 지방에서 탄생 했답니다. 한입 딱 베어 물면 벌써 마지막 한입만을 남겨 놓고 깜짝 놀라 아쉬워 하는 자신을 수줍게 발견하게 됩니다.


마을 전경입니다.
저렇게 기를 쓰고 예쁜 얼굴 하고 있는데 예쁘단 말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집 가까이로 더 들어가서 생활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디테일도 참 기가 막히더군요.

친퀘테레는 슬로우 푸드 협회에서 지정한 중요 보호지역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저 주변의 계단식 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올리브와 허브들도 재배 한답니다)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일년에 극히 소량만을 생산하기 때문에 아주 희소가치가 높다고 하는군요. 요즘에는 이탈리아에서 친퀘테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지면서 와인 값도 좀 더 높아 졌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저 동네에 직접 가더라도 다른 와인 산지들에 비해서 와인 값이 좀 비싼 편이었어요.

아티쵸크는 향긋해


밀라노에 돌아가서 저는 그동안 신세진 옹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기로 합니다.
사실 태국 사람들은 서양에 가면 음식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워낙 화려하고 강렬한 음식세계를 누리다 보니, 다른 맛에 적응하기가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끔 해외 로케를 한 태국 드라마나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스탭들이나  배우들이나 할 것 없이 둘러 앉아 태국에서 준비해간 태국 재료들로 태국 음식을 해먹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굉장히 모던하고 세련된 태국 젊은이들도 서양에선 음식 때문에 난감해 하다가 결국 쭝궈식당에 매일 드나들곤 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랑도 참 비슷하죠?

그건 옹도 마찬가지라서요, 생전 손에 물 한번 뭍혀본 적 없는 '대련님'이 밀라노에서는 삼시 세끼 자기 먹을 밥을 집에서 요리해 먹더라고요.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제가 태국 집에서 청소 해주시는 분들을 쓰지 않고 직접 청소하고 무릎 꿇고 걸레질 하는 거 보면서 저보고 '도우미' 같다고 껄껄대며 비웃던 녀석이 밥 해먹고 설겆이를 하다니요. 하하! '닥치면 하게 된다'는 말이 한국에서 썩 유쾌한 경우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옹을 보니 딱 그생각이 나더군요.

그래도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니까 그나마 옹이 가장 좋아 한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어요. 서울로 치면 진고개 같은, 상당히 '로컬한' 곳에 저를 데려 가더군요. 이것저것 음식들 다 좋았지만, 아, 이 아티쵸크와 빠르마지아노는 정말 단순함의 미덕을 극대화한 아름다운 조합이었습니다. 아아, 아티쵸크여 너의 푸르른 향이여!

마지막은 또 루이니!

 
이거 보세요. 제 말이 맞죠?
마지막 날, 안먹고 가면 길이길이 서운 할까봐 들른 루이니입니다. 이때는 마침 점심시간 무렵이라 소녀시대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더군요. 물론 반경 300m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빤제로띠를 먹으며 정신줄을 놓고 있었고요.

별 거 없이 지낸 마지막 몇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마지막날은 바쁘데요. 이날도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비행기 시간에 또 딱 맞춰 공항에 겨우 도착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빠르마지아노 한덩어리, 리몬첼로 한병 까지 딱 사서 저는 드디어 유럽을 떠납니다.






챠오, 이딸리아!
아리베데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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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시간후.













음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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