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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c

빠르크 [3]

박모과 pak mogua 2014. 7. 31. 22:29

티저 현수막은 내걸었지만...


[버퍼링]

빠르크는 2012년 10월부터 본격적인 개업 준비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안에 문을 여는 것이 목표였다가 2013년 1월을 맞았고, 1월 초에 더는 밀리면 안되겠다는 불안감에 티저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식당을 열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함으로써 우리가 일하는 데 책임감을 더하고, 그만큼 일하는 속도도 높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현수막은 거의 두달이 넘도록 걸려 있었습니다. 일을 꾸준히 했는데도 한가지를 해 놓으면 그 단계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으니까요. 인테리어 세부사항에 대한 우리의 결정도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바닥에 관해서만도 세번의 변경, 두번의 큰 공사가 있었습니다. 그릇이며 집기들을 고르는 일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장에 나와있는 물건들을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딱 와서 닿는 조합이 없었습니다. 식당 하나를 여는데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가를 깨달으면서 이때부터는 어떤 식당이던 일단 문을 열고 음식을 팔고 계신 모든 선배 요식업 종사자분들을 존경스럽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기치 않게 길어진 공사 기간은 물론 절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돈은 기다려 주는 법 없어라 우리가 질질 끄는 동안 월세는 물론 각종 공과금, 관리비, 요리사들 급여까지 매달 착실하게 빠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예산은 불어만 갔습니다.


[생계]

3화가 이만큼 늦어진 것은 제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들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이런 곤란한 이야기는 도무지 해본 적이 없어서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 부분이 없이는 완성할 수가 없어요. 용기를 내어 제가 지난 2년 동안 가족과 동업자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엄마아빠 능력 있으니 건강하실 때 적당히 갖다 쓰면서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보자던 제가 삶의 방향을 급변경 하게 된 것은 바로 영원히 늙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것 같던 나의 두 어른들이 이제는 노인들이 되었다는 것을 목격해버린 후 찾아온 어떤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태국에 있는 30개월 동안 막판에 딱 한번 저를 보러 왔던 엄마가 '엄마도 이젠 정말 힘들다. 이제 너 스스로 살 길 찾을 궁리해.' 했던 말씀이 전까지 엄마가 말버릇 처럼 하던 푸념 혹은 투정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될만한 정황들을 때마침 동생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아 전화를 걸어 아빠를 졸랐더니 타지에서 제가 걱정 할까봐 식구들이 저한테만 입 꼭 다물고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만에 있는 동안 집의 경제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됐고, 까딱하면 집을 잃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저는 충격에 정신을 놓아 버리고 싶은 지경이되었습니다.


'집을...잃을 수도...있다고?!'

난 정말로 엄 들고 놀러 다니다가 집안 기둥뿌리를 모조리 다 뽑아버린 놈이었던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엄마를 위해 마련해 주신 부성애 담긴 유산, 나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의 배경 그 자체, 어디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와도 나를 품어준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굳건한 나의 울타리, 내 집.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도 특히 저는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에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어느 낯선 길 한복판에서 연고도 없는 불안이 몰려 왔을때 '나한테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든든함은 저를 안도하게 하고 씩씩하게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지키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 할지를 알고 나니까 가진게 아무 것도 없던 저는 그 모든 상황을 아예 남의 일처럼 외면해 버리는 상태가 되었다가, 손발 끝에 힘이 들지 않아 누우면 좌절감이 태풍처럼 몰려 들어 그냥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내 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분열해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기도도 하게 됐습니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버티겠다, 기분전환 하러 나가면 사건이 터지고, 밖에 나가면 안좋은 일이 생기니까 집에서 놀자 했더니 친구가 심하게 다쳤습니다. 나쁜 일의 세트 구성력은 이 우주의 가장 고단수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저는 이시기에 확실히 깨달았어요. 3년 반 동안 세계를 돌며 유유자적 하면서 차분하게 쌓아올린 고요하고 평화롭던 내 마음이여 어디에 갔는가, 저는 순식간에 눈을 못 뜰 정도로 너덜너덜해지고 있었습니다.


아, 진짜 나한테 왜 이래요? 

1화의 [743-1]챕터 무렵의 제 상황이 이랬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창업을 해보겠다 나설 수 있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아마 저는 엄마 졸라서 집에서 돈 끌어다 뭐든 해보고, 그게 마음에 안들면 또 더 갖다 쏟아 박고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뭔지 세상 해맑은 얼굴을 하고 온 서울에 보여 줬겠죠. 고등학교 졸업 하고부터 일을 시작해서 스물 일곱에 군대 가기 전까지 꾸준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왔지만, 제가 그것을 힘들다거나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상황 이전까지 저에게 돈이란 하고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고싶은 것을 사고, 가고싶은 곳에 가고,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보너스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을 일찍 시작했고, 일이 재밌으니까 신나서 했더니 일거리는 늘어나고 페이는 해마다 높아져서 저는 항상 또래들 보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설령 번 돈을 다 써버려도 잠 잘 곳 걱정은 없었고, 도움을 청할 안정적인 부모님도 있었으니까요. 돈 무서운 줄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게 고마운 것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우리 가족들 밥 먹고 안전한 곳에서 잠을 자는 것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더이상 누워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 모든게 결국 제가 초래한 일. 받아 들이기로 했습니다.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 클리셰 대사로만 들어 왔던, 또 영화 좋아하는 제가 그것 참 진부하다 여겨왔던 '우리집이 원래 꽤 살았었는데 갑자기 어려워지면서...'가 제 현실이 돼버린 이 난국은 제가 식당을 여는데 있어 '생계'와 '절실함'이라는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었습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온 제게 0과 그 아래에 대한 위기 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빠르크는 난관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지출은 더욱 더 계획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당연한 건데) 저와 제 파트너는 '분수에 맞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자.'를 기조로 세워 공유하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티브 잡스가 젊었을 때 '넥스트' 동료들과 회의하던 동영상을 몇번이고 보면서 '거래처가 우리를 돈 많은 호구로 보게 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아끼고, 깎아서 살 시도를 하자.'는 세부적인 실천 항목도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을 따르는 것은 계산서 금액도 제대로 확인 안하고 카드부터 내미는 버릇이 있던 저에게는 인간개조 작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업]

집은 악화일로였습니다. 꼭 드라마에서나 봤던 일들이 내집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직 손을 써볼 능력도 생기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모든 것을 50:50으로 나누기로 했던 저와 제 파트너의 약속도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낼 수 있는 금액은 애초에 제가 만들어 오기로 했던 금액에서 한참 모자랐습니다. 아무리 어려워 졌어도 우리집이 내 식당에 이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제 어린이같은 믿음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했습니다. 일단 일은 벌려놨고, 돈 들어갈 곳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지민이 한테도 이 상황을 알려야만 했습니다.


'지금 우리집이 정말 어렵게 됐어. 우리집에서 투자금 끌어오는 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이 말을 하려고 몇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거의 다 나왔다 입 안에서 뱅뱅 맴돌았습니다. 몇주 동안 고민고민 하다가 지민이에게 사실을 털어 놨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주변, 아니면 능력 있는 외국 친구들에게서라도 투자를 끌어 오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형제 끼리도 절대로 동업은 하는거 아니다.'

제가 동업으로 창업을 한다고 했을때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입니다. 지민이랑 저랑은 동업을 하기로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계약서도 안썼고, 심지어 아직 식당을 열기도 전이니까 상대방이 저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하면 동업을 파기 했더라도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민이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지금은 내가 여유가 좀 있으니까 우리 어떻게든 하는데 까지 해봐요.' 했습니다. 자기는 운영과 회계를 맡을테니 저한테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컨텐츠에만 집중하라고 하면서요. 그때는 싸이 씨가 '강남 스타일'로 온세계를 뒤집어 놓았던 때인데, 저희는 '대박 기운'을 받는다며 싸이 씨가 나온 동영상은 다 찾아 봤습니다. 그때 지민이는 YG의 양현석 씨가 싸이 씨에게 '너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해.'라고 했다는 것을 저한테 들려 줬습니다.

기나긴 준비기간 동안 지민이가 서점을 하려고 모아뒀던 돈, 잊고 있었던 적금, 지민이 부모님 돈까지 차례대로 빠르크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빠르크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우리 엄마를 전면에 내걸었고, 동업자에게 애초 약속과 다른 상황을 전가 시켰으니까요.

악어가 가득한 강 위로 하늘 높이 솟은 산, 그 끄트머리 절벽에 난생 처음 한손으로 매달리게 됐습니다. 다른 길은 없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힘을 내서 저 위로 올라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간판이 올라갔습니다.


<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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