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이형 잘 갔어? 거긴 좀 어때? 따뜻해? 재밌어? 모든게 더 나아? 걱정이 없어졌냐?
형 덕에 나 오늘 진짜 오랜만에 홍대 갔었어. 우리 처음 만난 엔비아이엔비, 같이 놀던 명월관 마트마타, 엠아이 그 동네 보니까 형이랑 나 추억 별 게 없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형이 캐나다 살다가 온지 얼마 안됐을 때 어느 겨울날,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는데 여럿이 모여서 밤새 놀고 홍대입구 역 버커킹에 모여서 아직 날도 안밝았는데 아침 세트 먹으면서 낄낄 대던 날이 생각났어. 그날은 무슨 필을 받았는지 형네 친척네로 우르르 몰려 갔다가 연희동 화교 중국집에 또 우르르 몰려 가서 이것저것 시켜먹고 그랬었다. 분명히 내가 살던 도시였는데 그날은 되게 여행 하는 것 같았어.
'너랑 있으면 뭔가 막 재밌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 형 나 처음 보고 형이 나한테 이런 말 했던거 기억 나? 난 형 처음 보자마자 와 이 형은 뭔가 다르네. 씨발 좆나 멋있고, 김치맨이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 혼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형이 나한테 그렇게 말해줘서 나 정말 신났었어. 형 같은 사람 진짜 처음 봤다. 그런 사람한테 그냥 존재로 인정 받았다는 느낌에 형한테 마음을 확 열었어.
그때 무슨 죽이 그렇게 잘 맞았는지 우리 같이 꼬팡간도 갔었잖아. 그때 꼬팡간 가는 길에 내가 그 전 여행에 혼자 거길 가서 이상한 애 만나 돈도 잃고 목숨도 잃을 뻔 했었던거 형한테 얘기 했었지. 근데 형이랑 그 애를 해변에서 딱 마주치고 내가 "와, 형 어쩌지? 내가 형한테 말했던 그 사기꾼 썅놈새끼가 여기 있네. 어떻게 복수하지?" 그러니까 형이 생전 없던 자제력으로 내 몸 붙잡고 나한테 그랬잖아. "야, 진정해. 화 삭이고 숨 크게 쉬어." 파티 하는 해변에 있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다가 진정하고 다시 오라고 했을때 기억난다.
방콕 있다가 홍콩에 가서 폴반딕 파티 사진 찍고, 거기서 완전 랜덤하게 홍콩 사는 필리핀 애랑 팀 짜서 웬 빌딩 20몇층에 있는 클럽에도 가고 그랬잖아. 잠은 충킹멘션 말도 안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형은 홍콩에서 내가 어디 모르는 데로 막 가면 가끔 날 붙들어 세우고 답답하다는 얼굴로 '야, 지금 어디 가는지 알고 가는거야?' 했는데 난 그게 참 의외였어.
그 때 우리 둘 다 처음으로 에미릿 항공 탔는데, 어떨지 몰라 불안불안해 하면서 탔는데 그게 엄청 좋은 항공사였던 거잖아. 한국인 스튜어디스가 자기 일하면서 한국 젊은 남자들 탄거 처음 본다면서 우리한테 엄청 잘해주고 술도 병째 막 갖다주고 그래서 뭔가 엄청 신나서 낄낄 댔었어.
꼬팡간에서 히피들이랑 물에 물 탄듯 쉬 섞이고, 가자마자 현지인 같더라 또 거기서는. 엄청 자연스러워 보였어. 스쿠터 탄 것도 진짜 잘 어울리고. 그 스웨덴 히피애랑 영국 여자애랑 해변에서 웃다가 죽을뻔 한 거 기억나? 형만 멍하게 있고. 우리 풀문 전날인가 가서 방 못 구하는 바람에 엠엠바 그 위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갔었잖아 산 위에. 산 위라 조용할 줄 알았더니 온 섬 베이스가 거기에 와서 쳐서 밤에 엄청 시끄러웠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거기서 비틀즈에 꽂혀서는 미셸을 엄청 크게 따라 부르고 예스터데이까지 막 틀고 그랬잖아. 돌이켜보면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서 비틀즈 노래 가장 많이 들었던 며칠이었던 것 같아.
며칠전에 운전중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듣다가, 오 마이 러브가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까 형이랑 그런 비틀즈 추억도 있었더라고.
나도 사진 찍고 형도 사진 찍고. 약간 겹치는 감이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둘이었으니까 다녀졌어.
형이 십만원 영화제 1회 1등 했잖아. 그래서 그 다음회 십만원 영화제에도 수상자 자격으로 가는데 거기도 따라가고, 김지운 감독님이랑 어디 중국집 방에서 회식하는 자리도 갔었다. 형은 안성진 형한테 가서 사진 하는 것도 종종 물어보고, 누가 뭘 잘하고 있으면 거길 가서 어떤 질문이건 했어. 나는 질문 많이 해도 '저기, 이런 질문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하는 사족이 이마쯤에 박혀 있었는데, 형은 그런게 없더라. 나도 더 질러도 별로 안이상해보이겠구나 깨달았어.
"재밌어 보여서 해봤더니 다 되던데?" 형이 제일 많이 했던말.
"아, 몰라" 이것도.
"그냥 해." 이 다음에는 "야, 홍대에서 음악하는 애들이랑 에스엠에서 연습생 하는 애들 중에 누가 연습 더 많이 할 것 같애?" 이 말은 아마 내가 평생 기억할거다. 명언이야.
배꼽 아래 있던 '찬' 타투. 형 점점 살쪄서 그게 뿔룩뿔룩 튀어나온 거 내가 열심히 놀려 먹었지 도리스랑.
형 차는 아반떼 투어링. 자기가 하는 일이랑 완전히 딱 맞는다고 몇 번이나 좋다는 얘기를 했었어.
진홍이랑 형이랑 셋이 놀다보면 그냥 우리는 어른이 되는건 불가능 하고 그렇게 계속 덜컹거릴 것 같았는데.
형이랑 영국 얘기 진짜 많이 했지. 난 그때 론돈에 한창 빠져서 돈 2백만원만 모이면 론돈에를 갔고, 갔다오면 형이랑 또 그얘기 하면서 밤 새고 몇번 그랬어.
내가 군대 덜컥 갔다가 태국 가서 살던 때, 형도 론돈 가서 런던임시정부 만들고, 거기서 살려고 했다가 비자가 뭐 어떻게 돼서 잘 안됐고, 그것 때문에 속상해 했던거를 이야기 했던게 기억난다.
형이랑 했던 페이스북 메신저.
형이랑 멀어지고, 나는 가끔 형 까맣게 잊고있을 때도 있었는데 형이 다 먼저 이야기 걸었었더라고.
형이 점점 국정원, 음모이론 이런 것들 많이 올리고,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하고 하는거 계속 지켜 보면서, 나도 혼자 그래봤으니까 그냥 형도 그런 때구나 생각해버린거, 아 이런거만 맨날 올리니까 아무도 대꾸 안해주지 그랬던거, 형.
미안해.
이렇게 무성의하게 대답하고.
대꾸도 안해서 미안해 형.
이게 형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말 건거였다는 거 나 아마 평생동안 기억하게 되겠지.
거기다 대꾸도 안했다는 거.
기억할게.
대신 내 주변에 형같이 하나도 안힘들게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사실은 무진장 힘들어 하고 있는데 그냥 이전처럼 지내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있는건 아닌지 촉을 열고 볼게.
그리고 잘 해줄게. 일단 대답부터 꼬박꼬박.
형, 형을 만나서 나 참 많은 것 깨달았고, 형 진짜 사랑해도 봤고 싫어도 했었고 독일 월드컵 그 무렵에는 찐하게 원망도 했었어.
좋은 게 더 많이 남은 것 같아.
내가 형 생각 종종하고, 그때마다 더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는지 더 깊이 기억해내볼게.
난 카이도 형수도 본 적 없지만, 나중에 카이가 크면 어떻게든 찾아가 꼭 이야기 해줄게.
형은 정말 역대로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잘 가 형.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