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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간병기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런다.

내가 구구절절한 사연들 얼마나 싫어하는데.




7월 4일

쉬는 월요일.

생전 안하던 짓을 했다.

동네에서 술 마시기로 한 것.


자정 넘어 강남 신세계 파티에 가있던 철화도 합류해서 이런 조합이 나왔다.

사케에 이어 맥주를 아주아주 많이 마셨다.

비는 7월초답기도 한 것 같고 이거 서울에 이런 비가 괜찮은 건가 한거 싶기도 하게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아빠는 우리한테 자기가 지금 어디서 사는 지도 안알려주고 있잖아.

아빠 갑자기 쓰러지면 그게 바로 고독사야.'

2월 아빠 칠순에 아빠랑 단둘이 저녁을 먹고난 다음부터 내내 혼자 사는 아빠가 마음에 걸렸던 내가 재양이에게 

고통분담 차원에서 부담스럽게 이야기 했다.


어쩌라고?


2:41am 05 July 2015 박재양과 권철화


7월 5일

전화기가 울려댔다.

마시고 들어와서 뻗었는데 용케 그 소리를 들었네.

부재중 전화가 이미 네통 와있었다.

모르는 02 번호.

새벽에 모르는 집전화는 거의 주차 때문이니까 얼른 안잔것 같은 목소리로 다음 전화를 받았다.


"박일기님 보호자시죠?

여기 보라매 병원 응급실인데요,

지금 박일기님께서 뇌경색으로..."


탱탱볼 튕기듯이 일어나 후다닥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가 놀라서 깼다.

"엄마, 아빠 쓰러져서 지금 병원에 있대."

"...상태 심각해서 가망 없다고 하면 연명치료 안한다고 해."

"엄마 미쳤어?"


문을 꽝 닫고 나왔다. 



6:47am 05 July 2015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어떤 광경을 보더라도 울지 말자

울면 아무 것도 못해


비가 저렇게 오고 있었다


7:09am 05 July 2015 the first look


엄마아빠는 우리를 좀 강하게 키웠다.

특히 아빠는 다른 건 아무것도 간섭 안하고 오직 건강이 최고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우리 새끼들은 밥 잘 먹고 똥만 잘 싸면 된다.'

우리 가족은 다행히 아빠 바람대로 잘 살아왔다.

잔병치레가 없어서 병원에 정 갈 일이 없었다.

좀 꽤 아파도 병원에는 잘 안갔다.

엄마아빠는 심지어 작은 통증에도 병원을 쉽게 가는 이웃들을 강도 높게 흉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병원에 가면 뭔가 크게 잘못된 일이 일어난 것 같이 불편해 하는 사람이 됐다. 

병원에는 다녀만 와도 뭔가 기분 나쁘고 찝찝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우리 가족의 건강,

특히 양친 모두 건강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다.

두 부모가 건강하니까 나는 어디로든 마음껏 다니고 있어도 뭔가 든든했다.

 큰 자산이 자랑스러워 힘이 났다. 


어, 근데

아빠가 병원 응급실에 저렇게 방치돼있었다.

혼자서.

본인의 상태도 모르는 채로.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없는 아빠.


"지금은 불러 보셔도 아마 대답하시기 힘드실 거에요.

일단 MRI를 보니까 오른쪽 뇌에 뇌경색이 상당히 넓은 부분에 펴져 있어요.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크게 4개가 있는데 그중에 3개가 거의 막혔다고 보시면 되고요,

이미 수술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은 지나셔 오셨기 때문에 

지금으로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약물로 막힌 혈관을 뚫는 작업을 해보는 정도에요.

이 과정에서 막혔던 곳이 급격히 뚫리면서 다른 증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진행이 상당히 많이 돼있는 상태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도 준비는 하고 계셔야 할 것 같고요.

아버지께서 앓고 계시던 지병이나 고혈압, 당뇨같은 증세가 있었나요?"


...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우리 아빠가 어땠었는지.

 


12:38pm 05 July 2015 Moving to Stroke Unit


쇼핑 리스트


종이컵 / 기저귀 / 피딩백 / 물티슈 / 가글액 / 압박 스타킹 / 억제대 장갑


뇌졸중집중치료실 쌤들이 능숙하게 오물이 잔뜩 묻은 아빠 옷을 가위로 쓱쓱 잘라 버리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힌 후

쪽지에 저것들을 적어줬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가리라 생각해 본 적 조차 없는 상점.

'의료기상'은 병원 길 건너 건물에 바로 있었다.

그 상점은 내가 시장에 갈 때 잠깐 차를 대는 곳 옆에도 있고

이마트 에브리데이 옆에도 있었다.

갈 일이 없으니 단 한번도 관심있게 보지 않아 인식하지 못했을 뿐.


"못보던 보호잔데?

...아이고 아버지가?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데?

일흐은?

...아유 우리 아들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

소변 기저귀는 안필요하고?"


혹시 모르니까.

아니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딱 3일치만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