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플래쉬백프라이데이

박모과 pak mogua 2016. 2. 12. 01:17

그제까지 겨울이더니 어제는 봄이 와서 밤이 되자 봄비까지 내렸다.

비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 안에 일어났던 긴박하고 복잡다단했던, 이 방 밖의 사람은 그 누구도 몰랐으면 하는 일들을 정리하다가 그대로 엎어져 깊이 잠이 들었다.


요즘 내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는데, 정신이 바로 일하면 생산성 측면에서 이 도시 챔피언 수준으로 삥! 켜지지만, 대개 그럴리는 없고 다시 돌아 눕는다. "30분 더 자도 돼, 괜찮아, 요즘 많이 일 하잖아." 이렇게 달래주는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 속삭이고.


그런데 오늘은 닫힌 방인데 짠바람이 불어와 하반신엔 이불을 덮은채로 윗몸을 일으켰다. 문이 열렸고 눈알이 깨져서 슬러시가 될만큼 짜릿한 광선이 나를 휘감았다.

이불을 훌훌 털고 침대를 박차 나갔다.


hello sunshine!



아-

키가 3미터가 될만큼 쭉 찢어 기지개를 펴니 주머니에서 톰 포드 뿔테 선글라스가 휙 빠져나와 재빨리 제 자리에 가 씌워졌다.

뿅, 어젯밤에 해변 어디선가 한짝만 잃어버린 30밧 짜리 내 발 보다 한사이즈 큰 플립플랍도 제자리에 찾아왔다.


히죽 웃고 서있는데 모르는 애들이 피부가 핑크가 된채로 나를 지나치며 자기들끼리 눈웃음을 웃길래 정신을 차리고 바다 쪽을 봤다.


"OI, Mo Kua! Ma laew laew na! Sud yod loey na! 오이! 모꾸아, 얼른 와. 좋다 좋아!"


히죽히죽. 어슬렁


어슬렁 계단을 내려가 백사장에 닿기 마지막 계단에 곱게 플립플랍을 벗어두고 (곱게 벗어둔 건 잘 안가져 감 막 벗어 놓으면 꼭 한짝 없어짐) 어


슬렁 선베드 사이를 지나 애들한테로 걷는다.


"Hey, dude! You still alive? Last night you were Soooo crazy. out of control!"

"Hey man, you too! We should do that again tonite! Part 2, Part 2!"


데이빗? 얼굴은 지금 보니까 기억나는데 뭐가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고 웬일로 이름이 기억난다. 벨기에 애랬나 프랑스 애랬나? 같이 안놀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빛나는 존재다.

데이빗은 이따 저녁 같이 먹자고 하고 내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줬다. 뭐야 벌써 팔로우 했네. 크크크


그러고보니까 숙취도 없이 말끔한 아침이다.

썬베드 하나에 친구들 가방이랑 태닝 오일이랑 코코넛 한통이 한모금 마신채로 있다. 그래 맹추 너가 그렇지 뭐.

자동으로 태닝오일 한 손으로 바르면서 무리한 멀티 태스킹 꿀꺽꿀꺽 코코넛 코코넛 아이 좋아

저 앞에 바다가 있다는 것도 까먹고 이게 맹추거라는 것도 무시해뻐리고 꼴깍꼴깍.

"야, 박모과 그거 내꺼야! 그만 마셔!" 맹추가 저쪽에서 소리를 질러서 정신을 차려보니 호로록호로록 텅 비었네.


쏘리! 눈웃음 눈웃음


"아, 뭐야? 다 마셨지? 이제 일어났어? 어제 어떻게 된거야?"

"몰라 어떻게 방에는 찾아 들어 갔네?"

"아침 다 돼서 들어 오던데? 그때까지 춤추고 놀았나보지."

"그러게. 오다가 데이빗도 만났어. 이따 저녁 먹자고 했어"

"데이빗? 누구지?"

"그러게. 크크크크크크크"


둥둥, 짠 물 위에 누워 넘실넘실.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적당히 다리만 움직여서 물 위에 떠있었다.


귀옆에서 퍼져오는 태닝오일 향기, 하늘도 온통 오일병 만큼 탠되서 예쁘다.



배고파.

아무것도 안먹으면 저녁 때 많이 못 먹으니까 뭘 좀 먹자.

지금은 무조건 쏘이 카쎔싼 3 매카가 해준 팟까파오꿍쌉카이다오두어이를 먹어야 겠다.


mae, kor Phad Krapao Goong Saap Jan Nueng Khrup. Khai Dao Duay na.


  

캅쿤캅  피!

그래 이 빨간 고추, 타이 바질, 날리는 쌀밥, 바삭한 흰자. 어우 매워 땀 나.

노른자는 이때 딱 통째로 옴쏙 먹어야지 깨면 절대 안돼.



Kid Tueng


후두둑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네, 이럴땐 내집이 최고지.


발코니 가서 커피 마시자.

수영장에는 오늘도 아무도 없네?


"야, 저거 까먹으면 안돼. 우기가 나 선물로 준거란 말이야."

"어, 암 쏘리. 잘 있네 뭐."

"하긴, 누가 가져가겠어?"


저녁 8시에 먹자는데, 비 그치면 오토바이 타고 정글에 다녀 와야겠다. 애들은 한숨 잔다니.

폭포 좋을 것 같아. 


sabai sabai

  

비그치고 바로 해가 쨍 나면 그야말로 후덥지근, 티셔츠를 벗어서 수건처럼 쥐고, 정글을 오른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햇빛 한줄기가 레이저 빔, 아 뜨거.



아 몰라 땀이 줄줄 등이며 가슴이 다 젖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비처럼. 선글라스 안에 김 서려.

땀을 닦다닦다 티셔츠가 다 젖어서 한번 꾹 짜는데 지나가던 꼬마애들이 세상 웃기다고 자지러진다.

"Rhon mai? 더워?"

'Rhon Rohn Rohn! 더워 덥다 더워!"



콰- 아직 먼데도 베이스가 상당한게 물 불어난게 느껴졌다. 딱 보고싶었던 걸 보게 될 것 같아 설레여 남은 길은 진흙이 튀건말건 달렸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꾸꾸루꾸꾸- 온 폭포에 꾸꾸루꾸꾸 팔로마가 울려 퍼진다. 저 동굴 깊숙한 곳으로부터.

난 휙 날아 가장 높은 반얀트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급강하 후 가볍게 착지해-진 땅은 푹신- 폭포에 가장 가까이 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꾸꾸루꾸꾸-



한참 앉아 있으니까

아무 소리도 안들리고 귀에서 윙- 만 맴돌기 시작했다.


깊은데서부터 끌어 올려서, 그렇게 안나오려고 버티고 버티다 압축기 힘에 빨려서 세상에 나오느라 엄마 몸 속을 슬라이딩 하던 그 힘들었던 순간부터 긴 한숨으로 뽑아낸다.

아무렇지도 않아질 때까지 후-



코끝에 맺혀있던 땀인지 이슬인지가 가랭이 춤으로 떨어진다.





그래 봄비야. 다 씻어가라.

폭포처럼.

댓글
댓글쓰기 폼
Total
140,433
Today
38
Yesterday
2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