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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술 끊습니다.

저 당분간 술 끊습니다. 도와주세요.
술 권하지 말아주세요.
아시죠? 저는 '한잔만'이 안되는거.

지난 한달 반 내내 약속이 없는 날이 없었고 술을 안마신 날은 하루쯤 되려나? '갈 데 까지 가보자.' 하는 게 있었고, '그냥 다 상관 없고 뭐든 다 먹을래.' 했던 것 같다.

전후 사정 설명 하자니 또 아빠 얘기가 붙는데, 뭐 그게 그렇다.

아빠 쓰러지고 초반에 병원 간병인용 미니 침상에서 자는데, 그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일단 너무 작아서 누우면 발목 부터가 저 앞으로 튀어 나가고, 그래서 허리가 아팠다. 또 아빠가 옆에서 계속 앓는 소리를 내니까 안그래도 가끔 불면을 겪는 나로서는 도저히 맨정신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매일 밤 마셨다 매일 밤. 완전히 골아 떨어질 만큼. 아빠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웬일로 입맛이 없다가 아빠가 잠이 들면 식욕이 돌았다. 먹고싶은 건 오로지 고기 아니면 치킨 뿐이었다. 매일 밤 그렇게 먹고 마셨다.

그러니까 세달만에 8KG가 불어서 인생에 처음으로 80KG를 찍었다. 처음으로 내 몸에서 셀룰라이트 층이라는 것을 봤다. 이렇게 살이 확 찌는데도, '어차피 병원에서 누가 날 보겠어?'라는 쪽이 더 강했다. 84KG가 금방 됐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한테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더이상 못보겠어서 자가 간병하던 동안 아빠 재활병원 지하에 있는 스포애니에 운동을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식단도 짜서 지키고 매일, 욕심 안내고 차근차근 시키는 대로 했다.

평생 해본 적이 없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일주일에 서너번씩 꾸준히 하니까 딱 열달만에 10KG이 빠졌다. 빠진 데서 근육도 올라오고,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내 몸에 대한 관능이랄까? 그런게 느껴 지면서 이런 운동에 왜 빠져 드는지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걸 의무교육과정에 넣지 않았나? 어렸을 때 시작했으면 몸 만들고 관리하기 훨씬 쉬웠을텐데.

아빠를 간병인 손에 맡기고도 일부러 그 스포애니에 다녔다. 운동하는 구실이라도 만들어 놔야 아빠를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빠 떠나고 몇주 뒤에 운동을 한번 갔었는데, 그 동네 자체가 사실 아빠 병원 가는 길 아니면 일생에 갈 일이 없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동네 편의점 앞에서 아빠랑 산책하던거, 이발소에서 아빠 이발 시켜 주던거, (아빠는 신기하게 이발소에서는 단 한번도 돌발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끝까지 다른 아저씨들 처럼 바리깡으로 머리 박박 깎는거는 싫다고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마지막 몇달은 내가 이발을 안챙겨 줘서 결국 병원에서 빡빡 깎아 버렸다.) 아빠 간식 준다고 순대 사던 집, 이렇게 온 구석에 아빠가 묻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 환자들 트레픽 때문에 늘 오랫동안 기다리게 되는데, 처음 보라매에서 넘어올 때 타고 왔던 엠뷸런스가 주차장에 서있다. 차는 서있는데 거기서 아빠가 들것에 실려 나와 엘레베이터로 가는 모습이 이쪽으로 와서 나를 뚫고 간다. 저쪽 구석 자리 후끈한 데서는 한여름에 아빠 외진 데리고 간다고 아빠를 휠체어에서 내려서 끙끙, 내차 조수석에 아빠 엉덩이를 걸쳐 놓고 끙끙, 아빠가 거기서 몸에 힘을 줘서 뻗뻗하게 쭉 뻗어 버리면 주차장 바닥에 철푸덕 끙끙, 이미 온몸이 땀 범벅에 얼굴에는 비가 내리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 나와, 아이 씨발 아빠 나한테 왜 이래 끙끙. 간신히 간신히 차에 태우고 큰병원에 도착해서 주차 공간 앞에다 차를 세우고, 휠체어 내려 놓고 고정하고 아빠를 내리려는데 거기다 쏙 차를 대는 아저씨. 아저씨 저 지금 환자 내리고 있잖아요? 쌩까고 가버리는 아저씨. 다시 땀, 휠체어 싣고, 주차 자리 찾고, 휠체어 내리고, 아빠 내리고. 땀 범벅하는 영상이 보인다.

'술 마셔서 해결 되는게 아니다, 이제 그만 하고 다시 운동하고, 생활관리를 하자.'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외쳐서 오늘 드디어 한달 반만에 간신히 운동을 왔는데, 운동하는 내내 '끝나고 고기 구워 먹어야지.' 생각만 했다.

그 지하 주차장에서 차까지 걸어 가는데 여기저기서 아빠가 보였다. 고기 먹어야겠네 진짜.

자정 넘어서 혼자서 조용히 고기 구워먹을 데가 일본이라면 몇군데 있겠지만 관악에 어디 그런데가 있을까 내가 하나 차릴까 생각 하다가 평소에 늘 지나쳤던 대로변 고깃집이 생각나 찾아갔다.

고기를 2인분 시키니까 당연히 세팅도 2인을 해주길래 '저 혼자에요.' 하니까 친절한 누나가 이미 내려 놓은 건너편 내 안보이는 동행인 세팅을 치워 주면서 영 분위기가 어정쩡 해졌다. 뭐, 혼자서 고기를 석쇠에 올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세상 무뚝뚝한 삼춘이 턱 나타나서 고기를 구워주기 시작했다. 다 구워진 쪽부터 가위로 잘라 내 앞 새송이 편 위에 갖다 쌓아주기까지. 그 삼춘이 냉면을 만들러 사라지고 나니까 이번엔 숯불에 불 붙이던 더 무뚝뚝하게 생긴 삼춘이 와서 더 한입 쏙 크기로 예쁘게도 잘라줬다. 둘 다 말 한마디 안하고 웃지도 않고 고기만 구워줬다. 나도 암말도 안하고 부지런히 집어 먹었다.

너무너무 고마웠고 위안이 됐다. 이런게 좋은 서비스일 수도 있구나. 끝내준다.

오늘 빠르크에서 4년 동안이나 함께 일한 수준씨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며 빠르크를 떠났다.
엄청 허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