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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나의 2011 [8]

박모과 pak mogua 2011. 12. 27. 02:10

*이번 포스트부터는 눈이 침침하시다는 제 아버지를 위해 글자를 좀 더 크게 씁니다.
(아빠, 아들 효자지?)


+오늘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어젯밤에 제 노르웨이 친구 토마스가 저에게 성탄 인사를 건네면서 전해온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네, 이 이야기 1편에 나오는 바로 그 토마스요. 그는 저에게 따로 'Please spread this news to the world; 이 소식을 온세상에 전해줘.'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올 겨울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답니다.
심지어 성탄절이었던 어제의 기온은 영상 8도였다는군요.
매년 눈속에 폭 파뭍혀 있었던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푸른 잔디 위에서 성탄을 보내는 기분이 얼마나 낯설었을까요?

제가 올 겨울 들은 소식 중 가장 무섭고 염려되는 소식입니다.
올해 1월만 하더라도 어디를 가나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었고, 해마다 그런 모습이 노르웨이의 겨울 일상이라며 잔잔하게 이야기 해주던 그곳의 친구들은 정원 나무에 초록색 이파리가 달린 사진을 찍어서 제게 보내 왔어요.

무섭다 (토마스의 사진)


북극과 가까운 오슬로에서 오늘(2011년 12월 26일) 찍은 사진이랍니다.
고작 1년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이 얼마나 많이 달라 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달라질지, 으아아 소름이 막 돋습니다. 꼭 내년에 지구가 멸망하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조만간 이 행성의 거대한 변화를 몸으로 겪게 될 세대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우왕좌왕 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닥쳐 오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떠날 생각은 있지만 늘 미루기만 했던 분은 지금 당장 회사를 관두고, 예금을 정리해서, 떠나세요. 

자,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리워라


방콕에 돌아왔습니다.
2년 6개월 동안 방콕에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바로 제가 돌아가는 '집'이 방콕이라는 것이었어요.
언제나 뜨거운 햇살로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지상낙원. 집에 가면 수영장이 있고, 썬베드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진장 설레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이거 였어요. 훌렁훌렁 옷을 벗어 제끼고 저희집 수영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제가 제대 이후에 '방콕'을 첫번째 거주지로 선택하자 주변의 많은 어른들이 '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가느냐?'며 무척 의아해 하셨는데요, '배울게 뭐가 있다고?'를 덧붙이시면서요. 글쎄요, 제가 여러분께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답은 이겁니다. 이 지구에서 매달 일정 금액을 쓴다고 가정 했을때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방콕이라고요. 


물론 방콕은 첫인상이 깨끗한 도시는 아닙니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어떤 곳은 분명히 더럽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요리조리 피해 다닐 수 있고요, 그 미로같은 길들 구석구석에는 착하고 품위있는 사람들이 정성들여 가꿔 놓은 아름다운 공간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제가 살던 이집은 방콕의 한복판, 씨암 근처였습니다. 하지만 방콕 한복판에 있는 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고요, 바로 옆집에는 방콕의 중요 문화재 중 하나인 '짐톰슨 하우스 뮤지엄'이 있어서 저는 공짜로 그집의 정글같은 (그 정원을 처음 만든 짐톰슨씨 스스로 그곳을 종종 '정글'로 묘사 했습니다.) 정원을 날마다 내려다 볼 수 있었죠. 방콕의 어지간한 새 콘도(한국으로 치면 아파트/오피스텔)들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은 수영장을 끼고 있어요. 저희집 수영장은 그중에 굉장히 작은 편이었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대낮에 혼자서 레인 부표도 없는 수영장을 독차지 하고 물 위에서 한가로운 사색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몸이 찌뿌둥 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한 날에는 저 물에 첨벙 들어가 30분이고 한시간이고 하늘을 보면서 둥둥 떠있었어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정말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제가 유럽에 있던 동안 자기가 살던 집을 정리하고 우리집에서 지내고 있던 라오찐이라는 친구랑 한참 수영하고 놀다가 방으로 올라와서 무심코 TV를 틀었더니요.

...


21세기 전반을 나중에 역사가들이 정리할 때 저날은 인류 역사의 커다란 분기점으로 기록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이날 하루종일 일본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그들의 안부를 물었어요. 제게 일본에 '마음이 쓰이는 친구'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번 놀랐고요, 최소한 저에게는 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더 이상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마음에 새겼습니다.

저날 저 장면을 몇번이고 보면서 저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몸서리 치며 깨달았습니다.
자연재해와 이런 생각을 연결하는 것이 다소 아동적이기는 하지만, 저는 저날 저 장면을 지구가 인간들에게 보내는 모종의 강력한 경고 메세지로 받아 들였습니다.

'인간들, 너네 똑똑히 봐라. 너네들이 "세계"라고 믿는 것들을 나는 한 순간에 다 삼켜 버릴 수 있어.' 


한편, 저 원전이 비상인 것은 오늘 까지도 하나도 나아진 것 없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악화 일로이지만 우리의 친절한 이웃은 우리가 걱정할까봐 계속 정보를 왜곡하고 축소하고 은폐하기만 할 뿐 뭐 하나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고 있죠?
참 재밌는 분들이에요. 


준비된 째박


제가 방콕에 살던 동안 제가 살던 집에는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게 바로 '박모과치유와재생센터'였습니다.

그곳에서- 뭔가에 지독하게 지쳐 방콕에 온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같이 맛있는 거를 (사람이 먹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던 친구들이 많았다고 해요) 해먹/사먹고, 마시고, 걷고, 수영하고, 춤추고, 아무것도 안하고 늘어져 있고 했습니다.
거기서의 제 일상을 같이 했어요.

그러면 대인기피가 생겼던 친구도 불면증에 시달리던 친구도 거식증을 앓던 친구도 신기하게 나아져서 돌아 가더라고요.

거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일단 동네 분위기가 한몫 단대이 했습니다.
불교도가 대부분인 도시의 무슬림 지역, 아침은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가 열어 주는 곳. 창문 너머로는 거대한 십자가가 내다 보이는 좀 웃기는 동네. 가내수공업으로 실크를 짓는 장인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뭐 좀 있는 것 같은' 동네. 제가 집 구하러 다니기 시작해서 세번째 만에 찾아내고 마음에 들어 바로 계약해 버린 촉이 제 친구들이랑도 잘 맞았었나봐요.  


생애 첫 사업을 말아먹고 비탄에 잠겨 있던 제 친동생 째박이도 그곳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3주만 아무것도 안하고 형 옆에서 좀 쉬겠다며 방콕에 왔습니다.

...3주가 3달이 될지 이땐 정말 몰랐죠.

우리는 어릴적에 동네 사람들이 다 알만큼 사이가 좋은 형제였습니다. 저는 항상 얘 손을 잡고 어디든 다녔어요. 지금이야 많이 상했지만(저 사진은 제가 뽀샵 했습니다.) 어릴땐 정말 천사같이 귀여운 동생이었거든요. 그렇게 사이가 좋던 우리였지만 사춘기에 각자 다른 관심사를 향해 달려 가면서 좀 멀어 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2002년에 같이 태국을 여행 하면서 우리는 '형제'라는 것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됐고요, 그때부터는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친해지고 있습니다.

째박이가 태국에 와있던 세달 동안 우리는 마음 저 밑바닥에 있던 것들까지 탁탁 털어 꺼내 놓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이야기 해도 이야기 할 것이 계속 올라 오더군요. 엄마 아빠 이야기 부터, 우리가 같이 겪었거나 따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몇시간이고 했어요. 이야기 하다 보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겪고도 저와 제 동생이 한 생각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상당 하더군요. 아예 다른 사건을 지나온 것 같은 부분도 있었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삼천피스짜리 그림 퍼즐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마지막 한 부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어요. 저 혼자서는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원점으로 되돌아 오곤 했던 많은 질문들이 명쾌한 답을 찾아 나갔습니다. 어쩌면 가장 끈끈하고, 서로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서로 너무 편하거나 당연시 했기 때문에 놓치고 있던 것들이 이렇게 많았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형제는 이제라도 우리가 각자의 하드 디스크 비밀번호를 풀고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 참 기뻤습니다. 우리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까, 세상에 나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동행자가 하나 있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요.라고 쓰면 아빠가 보면서 허허 웃겠죠? 허허

따지고 보면 '박모과치유와재생센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저였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친구의 짐을 같이 '들어 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건 바로 저를 낫게 하는 매직이기도 했던 겁니다.

비가 오면 저기에 앉아 비 오는 것을 봤어요

 
하릴없이 보내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저 작은 베란다에 마실거 들고 나가서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몇시간씩 뚝딱 갔어요.
거실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뽀송뽀송 시원한데 굳이 저기서 따닥따닥 앉아서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가 좀 더 '인텐스' 했다고 할까요? 후덥지근한 방콕 공기 속에서 나랑 내 친구들은 각자의 담을 조금씩 낮췄습니다. 훈풍에 옷을 한겹한겹 벗어 던지듯이요.


방콕 시절 중에 저 베란다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아마 두달은 족히 될겁니다.

친구 잘 둔 덕


지난 4/5월 방콕에는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볼만한 공연이 쏟아 졌습니다.
신나서 부지런히 보러 다녔죠. 방콕 살면서 가장 큰 결핍이 바로 문화적인 데서 왔었거든요.

파이스트무브먼트의 공연은 예상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볼만 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곡에서 방콕 관객들의 '떼창'이 터져 나왔는데요, 이때만 하더라도 잘 알려진 곡이 'G6' 한 곡 뿐이었던 때라 뜨거운 관객 반응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니가 제일 잘 나가


말하면 입만 아픈 데드마우5는 이날 스테이지 세트와 비쥬얼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그의 '2011 썸머 페스티벌 씨즌 투어 셋'을 펼쳤습니다. 제가 방콕에서 꽤 논다면 노는 편이었지만 이날의 관객 구성은 정말 어메이징 했습니다. 물이 참말로 진짜 엄청나게 좋았고요, '아니 얘네들 다 평소에 어디서 노는거야 도대체?'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습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사람들 구경하느라 눈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고개가 막 돌아가고 타조 마냥.

이날 같은 '좋은 물'은 전에도 본 적 없고 이후에도 본 적이 없어요.
방콕은 다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르겠는 것 투성이에요.


허병국 사마


뮤직인지 매직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던 허비 행콕 선생님의 공연.
귀도 마음도 아프지도 않았는데 그냥 다 나았어요.
방콕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무에타이는 룸피니 경기장!


제가 방콕에 사는 동안 저를 보러 와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무척 행복한 일이죠.
'먼데서 친구가 찾아와 주는 것'이 왜 시까지 지어 부를만큼 뜨거운 것인가를 저는 방콕에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친구들이 오면 저는 뭐든 같이 했어요.
이 무에타이만 하더라도 몇 번을 봤지만, 친구랑 같이 하는건 만날 가는 커피빈에서 만날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더라도 좋잖아요.

방콕에서 무에타이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룸피니' 경기장과 왕궁 근처 '랏담리' 경기장이 있는데요, 둘 다 가보니까 룸피니의 경기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재밌더군요. 
좀 더 야생적인 힘이 살아 있어요. 무에타이 경기장 링 안팎에는 '태국다움'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링 바깥의 풍경들도 주의 깊게 살펴 보시면 훨씬 더 값진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성무형, 쌍꺼풀 왜 하셨어요?

 
별 거 없이 지내던 어느날 저는 무심코 들른 가전 매장에서 세일중인 TV를 한대 덜컥 샀어요.
TV를 산 것은 심리적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더해진 결과였는데요, 저는 이때 제가 태국에 1년 이상, 아니 그것 보다도 오래 머무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정말 이렇게 잘 지내도 되는 거야?
가 그때 저의 유일한 걱정이라면 걱정이었으니까요.
마음이 그렇게 편해지고, 제 안에 풀고 싶던 것들이 대부분 풀려 버리니까 (설마 했던 것들까지요) 아무데도 가기가 싫더라고요.
뭐든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적으로 발전 시켜서 태국에 정착하고 싶었습니다.

TV를 사고서는 뭐, 이런 것들을 했죠.
'왕가위 감독님처럼 왕가위 감독님 영화 보기'
-왕감독님께서는 어디서나 늘 썬글라스를 끼고 계시잖아요. 현장에서도 영화제에서도 항상. 그래서 그분 영화를 그분이 보신대로, 의도하신대로 보려면 썬글라스를 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였어요.

나중에 서울 가면 우리 꼭 극장 하나 빌려서 썬글라스 끼고 중경삼림 봅시다!
금성무 형님도 초대해서 이것만은 우리 꼭 물어 보기로 해요.




'아니 도대체 왜 쌍꺼풀 수술 하셨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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