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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E

먹고 싶었던 거 대신?

찝찝하네요.
저녁을 먹고 왔는데 찝찝해요.

으따, 제 얘기 좀 들어보소.

'카레' 바


지난 생일, 예정에 없었던 돈지랄이 있었던 관계로  이번주에는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참 싼 것들만 먹었습니다. 요즘 타이베이에는 허구헌날 비가 오는데다, 나가서 돈 써 봤자 딱히 재미도 없는 것 같아 금요일 어제는 집에서 그냥 맥북이나 만지고 있었어요.

오늘도 그럴 생각 이었습니다.
마침 캐쉬도 떨어 졌겠다, 없는대로 한번 버텨보자 했어요.

이것저것 정리 하면서 트위터를 켜놓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타임라인에 '피쉬&칩스' 이야기가 올라 오더군요.

피쉬&칩스라...
이런 눅눅한 날에- 튀김옷을 투박하게 입고 짤짤 끓는 뜨거운 기름탕에 퐁당 들어갔다 나와 바삭하게 튀겨진 흰살 생선을 식초 착착, 타르타르 소스에 그냥 푹 담가 호호 불어 입안에 넣으면 아아 뜨거워서 '하----스 , 하---스' 입안에서 좀 식힌 뒤에 앟! 해삐! 하트뿅뿅이모티콘

이거 참 기분 전환 되겠는걸? 했던거죠.

거기에 니가 뭐 아이리시라고 귀네스도 두어 파인트 곁들이면 기분이 참 좋아 지겠구나!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었어요. 귀네스팔트로귀네스팔트로!

검색을 좀 하고, 찾아 지길래 나갔습니다.

제가 그런데 살면서 무진장 싫어 하는 것이 있어요. 진짜 무진장!
양말 신고 신발 신은 채로 비오는데 나가서 발이 젖는 겁니다.

으아아아악! 오늘 타이베이에는 오후 내내 비가 와서 나가자 마자 빗물이 침투, 발가락이 젖기 시작 하데요. 최대한 나의 '반스' 앞코가 젖지 않게 하려고 소녀 꼬냥이처럼 사뿐사뿐 걸어봐도 아무 쓸모짝이 없었어요.

목적지인 '사우스아프리칸피쉬하우스'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집에서 약 15분 거리. 하지만 저는 출발 5분만에 그냥 주변에 뭘 대체할 것이 없나 두리번 대기를 시작했어요. 

마침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식 카레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에서 핏짜 다음으로 '수많은' 2위권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또 '카레' 되겠어요. 그래서 저는 일단 방향을 휙 틀어 식당 앞에 가서 메뉴를 확인 했어요.

씨푸드 카레, 돈카츠 카레, 에비 후라이 카레...에비 후라이 오믈렛 카레!
이거다!
피쉬&칩스의 대안이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카레의 구색(저는 오믈렛 덮은 카레 스키다까라)은 또 다 갖추고 있는 이거! 

어쩜!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빠릿빠릿 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더군요. 이래라 저래라 해서 죄송합니다만 위의 사진을 주의깊게 보시면, 여기는 일단 카레를 스시바 같은 '바'에서 팔고 있어요. 그냥 주방장이신지 사장님이신지, 아무튼 책임 있어 보이는 저기 저 남성분께서는 일본 분이시고요, 주문이 들어오면 카레를 일인분씩 직접 불을 봐가며 저기서 저렇게 만들어서 내시더군요.

이야 뭔가 제대로인 느낌이 딱 오죠? 그리고 저 직원들 뒤에 보시면 가마솥이 있는데요, 밥도 가마솥에다 짓는 모양이어요. 메뉴에 보면 밥도 흰밥/오곡밥 중에 선택 가능하게 해뒀고요, 바게트를 선택할 수도 있더군요.

그리고 메뉴에 첨부된 사진으로 본 두마리 새우튀김의 두툼도가 굉장히 충실해서, 이정도면 '피쉬&칩스'로 불거진 식욕을 잠재우고 일본 카레로 하이가 되는- 일타쌍피 터지겠는걸?!하는 뾰로롱한 기분이 되었던 겁니다.

난 참 촉이 좋아 역시 후훗.

카레 가격은 대하 두마리 튀김과 오믈렛이 추가되어 싼 편은 아니었어요.
우리돈 만천원 플러스 텐?
저는 풀을 좀 먹고 싶어서 거기에 이천원 상당의 음료+샐러드 바 옵션을 추가 했죠.

샐러드 바는, 하 그것 참 신기한데, 어쩌면 일본 지배 받은 나라들은 '샐러드 하면 *양상치'가 표준이 된겁니까? 서울에서는 항상 이것이 의문이었지만 '양상치가 비싸니까 있어 보여서' 정도로 이해하고 넘겼는데요, 태국에 살면서 양상치에서 좀 멀어졌다가 타이완에 와보니까 뭐 이건 또 하나의 '양상치 문화권'인 겁니다. 어딜가나 샐러드를 시키면 양상치가 그냥 수부둑.

여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양상치, 무채, 깡통 옥수수, 미역, 아 재미없어.
그래도 저는 부지런히 먹었죠. 재미는 없지만, 양상치도 좋은 거니까. 

음식 나오는 속도를 설명 하려고 양상치 밑밥을 깐 거 눈치 채셨나요?
저는 양상치를 무려 세접시나 퍼다 먹었습니다. 제가 음식을 또 남자 치고는 꽤 천천히 먹는 편이어요.
그런데도 세번.
흠.
뭐지? 아, 새우가 커서 튀기는데 좀 걸리겠구나? (난 참 순진해 병딱같이)

저는 그래서 식당 돌아가는 모습을 좀 더 집중해서 보면서 생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일단 직원들이 모두 손님들이 들고 날때 '이랏샤이마세!' 하더군요. 그리고 그 중 몇은 주방장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사실 이것도 타이완의 대단히 큰 특징 중에 하나인데요, 여기 사람들은 점령자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아서 아직도 '일본 것은 좋은 것이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돈을 쓰러 나가서 여러 선택지가 있을때 항상 우위에 서는 쪽은 '일본풍'인 곳이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에 가보면 또 외관과 시스템은 물론 언어까지 완전히 일본식입니다. 

이게 대단히 코믹스러운 거에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도요타가 한국에서 차를 팔면서 일본어 광고를 그대로 내보낼 수 있을까요? 
유니클로가 히트텍 팔면서 일본어 광고를 그대로 한국 공중파에 내보내는 건요?

우와! 이상하죠?
하지만 그것이 타이완에서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뭐가 어디서 어떻게 꼬인건지 이런 것이 편하지가 않아요.
타이완에 있는 일식집이라고 이랏샤이마세! 스미마셍! 아리가토고자이마스! 할거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봉수아 무슈, 빻동, 멯씨보꾸' 합니까? 아뇨. 그럼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면 '보나쎄라, 에스쿠자, 그라찌에 밀레' 하나요?
아뇨, '니엔떼!'

그런데 왜 꼭 일식집들만 어딜가나 일본말을 이렇게 '그것도 악 써가면서 단체로' 해대는 걸까요?
저는 단순하게 일본말이 그 어느 언어보다도 따라하기 쉬워서라고 생각 합니다.
그거 대단한 거죠. 가르치기 쉬운거.
그러고 보면 한국, 아니 조선도 참 대단합니다. 37년동안 그렇게 배우기 쉬운 말을 배우라고 허리에 칼차고 그토록 모질게 죠졌는데도 우리는 끝끝내 못 바꿨잖아요?(그 때 알아서 바뀐 사람들은 대개 지금까지 잘 살죠.) (아 요즘 서울 일식집에서는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이랏샤이마세 한다면서요? 우와 하나도 안 멋있고 골 비어 보인다.)
이거 왜 그랬을까요? 한민족이 언어 배우는 능력이 떨어져서?

아무튼 일본말 인사는 오늘 들어온 신입 알바생도 10분만 연습하면 따라할 수 있잖아요.
뭐, 그래서 일본말로 인사를 해놓고 막상 일본말로 주문을 하면 못 알아 듣기는 하죠. 
저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제 담당 직원이 제가 아직도 메뉴를 살펴보고 있는데 와서 제 앞에 서 있길래 좀 서둘러 주문을 했습니다. 제가 손가락으로 '영어/일어/만다린'이 표기된 메뉴 중에 제가 원하는 음식을 가리키니까 '스미마셍' 하더니 또 쭝궈말을 해서 이번에는 영어로 'I want this one, Curry rice with omelet and fried shrimp?'했어요. 그래도 못 알아 들었는지 다른 두명의 직원이 더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명의 직원에게 주문을 했던 것입니다.

아까 그렇게 주문을 하고 양상치 세접시가 다 비워지고 나서야 나의 카레는 도착을 했습니다.

뭐가 이렇게 길어?

맞죠?

여러분도 짜증 나시죠?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새, 새우야, 내가 주문한 왕새우야!
... 너 튀김 옷 누가 벗겼어?
...누가 이랬니?

직원이 드디어 이것을 내미는 순간 제 뒷골에는 스트레스가 따다다다닥!
따개비 붙듯이 따다다다닥!

원래 저 카레에는 저런 아기자기한 애들 말고 대하 두마리가 마치 '피쉬&칩스' 마냥 (네, 그것 보다는 좀 더 일본 후라이 식의 텍스쳐로) 튀겨져 저 오믈렛위에서 크로스하고 있었어야 했거든요.

"저, 이거 제가 주문한 거 아니그등요?"

당연히 저는 그런 애니까 얘기 했습니다.
그런데 친절하고 젊다 못해 어린 직원이 미안하다며 우물쭈물 대고 있는데 거기서 더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기는 싫어서(가 아니고 저는 원래 이런 경우에는 바로 음식 물리고 다시 해달라고 합니다)가 아니고 너무 배가 고파서 눈두덩이 파르르 떨리는 데도 애써 쿨하게
"괜찮아요 그냥 먹을게요" 해버렸습니다.

결국 이분들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를 저에게 보여 주셨군요.

맛.
저는 이 가게를 나서면서 정말 무진장 슬펐습니다.
진짜정말참말로또뭐가있나찡찡쩐더혼또니 슬펐어요.

제가 구구절절 설명을 했듯이 이곳은 '카레를 미리 다 만들어 놓고 주문 받으면 한국자 푹 퍼서 밥 위에 얹고, 토핑만 조리해서 내는 집'이 아니잖아요? 나름의 장인정신을 살려서 각 주문을 하나하나 주방장이 -그것도 무려 오픈 키친에서- 바로 조리해 내는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저기 있는 해물들이 모조리 다 타이어 일보직전으로 오버쿡트(고든램지씨 소리 질러!)였습니다. 오징어와 새우 사이에는 사실 관자 한쌍이 잠겨 있는데요, 걔네들은 비렸고요.
커리의 맛은 제가 맵지 않은 맛을 주문한 것을 감안 하더라도 굉장히 연하고 '달달'했어요.
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

아아, 이렇게 관리를 잘 하고, 쏘울을 갖추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주방장이 한땀한땀 책임을 지는데도 어떻게? 왜? 도대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요?

저게 그분 맛이라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
안가면 되니깐요.
저 집의 주 종목이 해물이 아니라고 하면 뭐, 또 할 말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마음이 아프던 말던 어쨌든 저곳은 손님들로 북적북적 했어요.
제 입이 좀 특이한 거겠죠.

친절한 직원은 제가 나올 때도 너무나 친절하게, 그리고 공손하게 자기가 주문을 잘못 받은 것에 대해 굉장히 정중하게 사과를 하면서 제가 요구 하지도 않았는데 10% 할인한 계산서를 주더군요. 

저도 그냥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왔어요.

아, 뭐지? 이 이상한 카레집은?
맛 없다고 욕이라도 마음껏하게 싸가지라도 없으란 말이다!

발가락이 좀 젖더라도 그냥 피쉬&칩스 먹으러 갈걸!
차라리 맥도날드 가서 생선버거랑 후렌치 후라이를 먹을걸!
하면서 배는 이미 부른데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똥 싸러 가서 방구만 뀌고 나온 것 같았어요. (소녀 독자들 죄송^^)

열 받아서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와인 두병을 샀습니다.
하하 아까 써치하다 알아본 '지금 타이베이 최고의 뷔페', 'W타이베이' 저녁 뷔페가 1180NT$+텐이랬으니까, 저는 결국 오늘 저녁, '호텔뷔페 아끼려다 초가삼간 태운 남자'가 되었군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이럴 줄 알았어.
저는 분명히 내일이던 모레던 이틀 안에 피쉬&칩스를 먹으러 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먹고싶은 것이 있을 땐 그것을 먹어야만 합니다.
안그러면 홧병 생겨요.


*양상추인거 압니다. 양상치가 더 쫄깃해 보여서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