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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E

타이베이 코스트코 구경기

제가 이전에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라는 포스팅에서 '
코스트코 가는 거 무지 좋아하는, ...'라고 썼던 적이 있었죠? 제 블로그 유입 경로를 보니까 '타이베이 코스트코' 검색해서 들어 오셨던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낚시를 한 것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허허

사과하는 의미로 정말 코스트코에 다녀 왔어요.

파워 블로거가 되려면 교통편이며 가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지도를 첨부해 가며 설명해야 옳지만, 뭐 저는 비도 오고 귀찮아서 택시를 타고 다녀 왔습니다. 제가 택시를 탄 곳은 '국부기념관'역 근처였고요, 제가 간 매장은 '네이후'점이었습니다. 저녁 일곱시 경에 탔는데 150달러가 안되게 나오더라고요. 
 
 

똑같죠?


(어찌됐건)고향에 온 기분이군요.
저는 코스트코 핏짜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적 어찌어찌 해서 미군부대 안에 초대받아 갔다가 드레곤 힐 랏지 지하 핏짜 코너에서 맛 봤던 그 거대하고 탐스러운 미국식 핏짜! 한번 맛보면 인상이 탁 찡그려 지면서 잠시 세상만사, 가치관을 내려 놓게되는 짠한 그 맛. 서울에선 오직 미군부대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 환상의 핏짜. 그 핏짜를 비로소 미군 부대 밖 민간인 구역에서 다시 맛 본 것이 바로 코스트코에서 였거든요.

태국에는 코스트코가 없어서 그 핏짜가 참 그리웠던 저는 타이베이에 이사 온 직후부터 친구들에게 일요일 마다 (핏짜는 또 일요일에 먹으면 두배로 맛있죠) '코스트코에 나를 좀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회원 가입비는 한국이 더 쌉니다.


코스트코는 아시다시피 회원제로 운영하는 데다 회원 가입도 따로 돈을 내고 해야 하잖아요? 저는 코스트코 회원이 아니고, 제 하우스 메이트 타이완 친구도 아니어서 거기에 가려면 누군가 제삼의 친구에게 부탁을 또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좀 그렇잖아요, 이런걸로 부탁 하는거.

그래서 그냥 덮어두고 지내다가 새해 첫날부터 저랑 대판 싸운 이 친구가 제게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는 건지 '코스트코 회원 가입을 해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딱 눈치 채고 됐다고 손사래를 치니까 뭐, '몇가지 살 게 있다.'고는 했는데 오늘 별 거 사온 것이 없는 것으로 봐서 그냥 제 기분을 좀 풀어 주려 한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고마워라.

코스트코 한국 회원은 전세계 어느 매장에서나 한국에서 만든 회원증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비교를 해보니까 회원 가입비는 한국이 타이완 보다 좀 더 저렴 하더라고요.

양재동 아닙니다.


'하오쓰뚜오' <好巾多>
매장의 풍경도 같고 파는 물건도 거의 같고 현금만 받는 것도 같지만 모든게 다 같은건 아니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이름이 다릅니다. 하하하!
택시 기사분이 영어를 좀 하는 분이면 다행이지만, 아닌 경우라면 택시를 타고도 헤매거나 좀 답답할 수가 있으니 잘 기억해 두세요. 코스트코는 만다린어로 '하오쓰뚜오'.
 

왼쪽상단, 오른쪽 하단. 반가워라!


뭐, 요즘엔 신기한 것도 아니지만 대만 코스트코에도 한국 상품들이 제법 있습니다. 낭심 신라면, 우뚜기 백세카레, 북경 짬뽕. 뭐 이런 뻔한 것들 부터요, 김치, 김자반 같은 반찬들, 각종 과자류, 그리고 배, 딸기 같은 과일류도 팔고 있더라고요. 역시 배는 한국산이 최고죠?

여러분께 지방을 드립니다. 돈만 내세요.


친구와 화해를 하는 바람에 아직도 저는 친구네서 머물고 있는데요, 확실히 여기가 제 집이 아니다 보니까 살 물건이 없더라고요. 남의 주방 어지럽히기 싫어서 요리도 안하고 있으니, 식재료 쪽은 아예 쳐다도 안봤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고백 하자면 저는 20대 내내 가벼운 마음으로 수퍼마켓에 구경만 가도 물건을 한차씩 꽉꽉 실어오는 못된 버릇이 있었어요. 꼭 수퍼마켓만 가면 자제력을 잃었습니다. 그짓거리를 한주가 멀다 하고 했어요. 그랬던 제게 코스트코는 신천지였죠. 다른데 없는 게 많잖아요.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과자 특대 사이즈, 술, 식재료 까지 앞뒤 재지도 않고 막 담았습니다. (씨리얼은 왜 그렇게 사댔을까요?) 마치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에 나오는 그 지구 멸망 대비용 지하 창고를 꾸미기라도 할 사람처럼 말이죠.

코스트코에서, 물 건너 온 미제들을 특대 카트에 꽉꽉 채우면 아아 나의 생활은 더 풍요롭고 아메리 해지는 것 같고, 그 재료들은 나의 식탁을 더욱 더 풍성하게 빛내줄 것 같았지만 실상은...성견 사료만한 씨리얼은 일년을 가도 다 못 먹고, 특대 콜비 치즈는 딱 두번 쓰고 한달 뒤에 곰팡이를 뒤집어 쓴 채로 쓰레기 봉투로, 채소들은 그것보다 좀 더 일찍 물러져 버려졌죠.

사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미국산 식품들이라는 것은 일단 제조 과정에서부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들이 있고, 설탕이면 설탕, 나트륨이면 나트륨, 첨가제면 첨가제들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어 정기적으로 장기 섭취하면 우리 몸에 좋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먼 거리를 이동해 오고도 어마어마한 유통기간을 자랑 합니다. 그것들을 깡통에 담았던지 급속 냉동을 시켰던지 마찬가지인 거, 다 아시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저렇게 삭막한 공간에 투박하게 아무렇게나 막 쌓아놓은 것들이 다 좋아 보이고, 먹음직 스러워 보인다는 것은 참 대단한 흑마술이라고 할 수 밖에요.

그것들을 사다 먹으면 살은 또 왜 그렇게 찌는건지, 우리는 또 헬스클럽 평생 회원권을 사게 되고, 기껏 먹은 것들을 태우느라 여가시간을 다 날리고, 그 와중에 우리가 죽는 날은 와도 지들이 망할 날은 오지 않을 거라던 그놈의 헬스 클럽은 통째로 도망을 가버리죠.

월요일 저녁인데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타이완도 설이 연중 가장 큰 명절이기 때문에 설 장을 보러온 인파로 월요일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무진장 많았습니다.

코스트코의 진정한 성소, 제가 그토록 그리워 했던 카운터 옆 '팻 부스;FAT BOOTH' 되겠습니다. 저는 왜 여기에 그렇게 오고 싶었던 걸까요?

마치 관타나모 수용소의 포로 식당 같은 저곳이 왜 그렇게 때때로 생각났던 것일까요?

저곳은 진정 인류 문화의 미스테리 중 하나입니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는데 일년에 4만원 상당의 가입비를 낼 의향이 있는 사람들, 저 특대 카트에 가득 채운 전리품들을 실어갈 차가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룬 계급의 사람들이 '창고에서' 장을 본 뒤에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품위 없는 식당에서 쇼핑으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서서 먹는 것도 마다 않고, 다른 이들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옆에 바짝 붙어서 얼른 일어 나라는 눈치를 주는 원초적으로 동물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죠. 심지어 쓰레기통 바로 옆에도 딱 붙어 식탁이 있지만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죠?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따위는 잠시 잊게 해줄만큼 아름다운 미국의 맛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호오, 불고기 베이크?


불고기 베이크가 미국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이완에는 들어와 있군요.
이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저 옆에 저거, 쉬림프 베이크라는 게 있네요?
시켜 봤습니다.

요래요래

 
하하, 게(맛)살과 새우가 치즈에 실하게 버무려져 꽉 들어차 있습니다.
맛도 꽤였어요.
뭐, 다 같은 코스트코라도 나라마다 이런 재미가 있어야 가보는 재미가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저 뒤에는...
 

코리안 코스트코'스 할매할배'스 오리지널- '한국전쟁 피난민 스타일 양파홀스레디시머스타드무침' TM

 
하하, 반갑죠?

이것은 제가 한국 코스트코에서 처음 보고 놀라 자빠질 뻔 한 아이템 되겠어요.

반찬이 없이 밥 먹는 것은 영 신통치 않은 한국사람 식습관에, '양식은 느끼하다'(근데 왜 먹음?)는 고정 관념이 만든 사상 초유의 돌연변이!

핏짜를 시키면 당연히! 피클을 함께 배달 해야만 하고, 후라이드 치킨에는 초절인 무, 짜장면에는 단무지, 심지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피클을 제공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밥상머리 창의성의 결정체!

저는 한국 코스트코에 처음 가본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환갑을 훨씬 넘기신 어르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한 것'들을 앞에 두고 둘러 앉아 오손도손 드시고 계시던 그 광경의 생경스러움이란! 이렇게 표현해서 한편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그 중 몇몇 분들의 자연스러움에서는 '야 임마 내가 임마 젊었을때 부터 미군부대 좀 왔다갔다 하고 임마 함박 스테키랑 핏짜 먹으면서 데이트 한 사람이야 내가 임마. 내가 임마 미국에는 임마 일년에 두번씩 갔다 오고 임마 미제를 갖다 집에다 쌓아놓고 내새끼 내손자는 미제만 맥여 키운 사람이야 내가 임마!'의 위풍당당함이 느껴 졌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옆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종이접시 한가득 정체 불명의 '반찬'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저거였다 이말씀이죠, 네.

애석하게도 타이완에는 아직 저 반찬의 오묘한 맛이 전파가 안 된 모양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저것을 저렇게 응용한 테이블이 없더라고요. 때때로 각각의 재료들을 따로 담아온 분들은 계셨지만, 저런 모양의 완성품을 드시고 계신 분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전했죠. 후후.
만들고 있으니까 다닥다닥 붙은 양쪽 옆 테이블 사람들이 저를 신기하게 곁눈질로 쳐다 보데요. 그래서 제 친구에게 영어와 어버버 만다린을 섞어 그게 뭔지 설명도 착실하게 해 줬습니다. 옆테이블에 다 들리게요. (큰소리로 안해도 다 들리는 거 아시죠?)

사실 저기에 케찹도 좀 섞어야 '한국전쟁식'이 되지만...차마 그것까지는! 으억!

씨푸드 핏짜!


자, 오늘 제가 코스트코에 다녀온 가장 중요한 이유, 핏짜 시간입니다!

으아아 으아아아아악!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이야기란 말입니까?

없어요 없어.
타이베이 코스트코에는 치즈 핏짜가 없습니다!

한입만 베어 물어도 인간이 이런걸 만들어 다른이에게 먹으라고 내밀어도 되는가 싶게 만드는- 미국 저기 어디 촌동네 주방장의 투박함이 녹아 있고, 반정도 먹으면 뱃때지에서 지방 세포가 분열 폭발하는 짜릿한 기분이 전해져 오는 그 살벌한 핏짜가 여기엔 없습니다. 
엉엉엉!

아쉬운 대로 먹은 저 씨푸드 핏짜는... 절대로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핏짜에 당근과 완두콩이라니요? 욕이 나오려고 한다. 부들부들!

대신 여기에는 '로컬라이즈드 스페셜'로 '베이징덕 핏짜'도 있으니 용기 있는 분들은 도전해 보세요.

이거 한국에도 있나요?


무척 진지하게 상심한 제게 친구가 '타이베이 코스트코에서는 이것을 먹어야 한다.'며 사준 스뫀트 샐몬 롤. 저거 두개만 먹어도 한끼 식사로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막 열개씩 들어있긔.

맛이요?
살 찌는 맛입니다.

알면서도 코스트코에 가는 이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