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가던 날 아침 비행기에서는 애초에 잠이나 잘 작정을 했다. 그래도 몇 번 안타본 대한항공은 영화 셀렉션을 어떻게 해놨나 궁금해서 유별나게 촌발 날리는 인터페이스를 따라 가다가 발견한게 <그레이트 뷰티>.
틀어놓고 보다가 자야지 했는데 시작 하자마자 이거 심상치 않은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다깨다 보고 들은 영화는 내가 꾼 꿈, 먹구름 위 창밖 풍경과 뒤죽박죽되어 대체 그 뜻이 뭔지를 알 수 없는 꿈과 같이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교토는 기대를 다 채우고도 남았을 만큼 좋았다.
내가 여기서 언젠가 살았었나 할 정도로 마음이 편했고 잠이 잘 왔다.
그런데 희한하게 거기서도 비행기에서 잠깐 본 그 영화가 자꾸 생각났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 영화가 그립더라.
자꾸 엇갈리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나니 더 좋았다.
내가 로마에서 본 것. 생각한 것. 내가 산책했던 길과 췄던 춤이 나오는 영화였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굳고 높은 철문 너머의 것들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이 내 상상과 묘하게 들어 맞으면서 쾌감이 짜릿했다.
교황께서 이나라에 오셨을 때는 우연히 싸이월드에 갔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갔었을 때 썼던 일기를 찾아 보고는 그것이 8년전 8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일 월드컵 막바지에 서울을 도망쳐 빠져 나왔던 그 여행이었다. 아무도 나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일기를 보면서 내가 로마에서 얼마나 순전히 공상 속에서 쏘다녔었는지를 기억 해냈다.
거기서 내가 가진 가장 큰 궁금증은 순전히 창조자와 나와의 관계, 그분이 나를 만든 계획은 뭘까였다.
거기서 하루는 이스라엘에 갈 것인가 네덜란드에 갈 것인가를 두고 온 하루를 다 걸으면서 고민했다. 그 하루종일 로마가 나를 보듬고 달래 줬던 것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러다 결국 이스라엘에 가서 나는 이런 광경을 봤다.
2006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국경.
그날 쓴 것-
"텔아비브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 갈 거라는 내 계획을 어느 누구도 곧이 들어주지 않았다. '입달린 사람들은 다들 한마디씩 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씨엔엔과 비비씨에서 본 이미지들은 이게 씨엔엔인지 비비씨인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뻔한 것들 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암스텔담이냐 텔아비브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텔아비브 행 티켓을 주문하면서 한 생각이 바로 이거였다.
'기왕 이스라엘에 가니까 전쟁터에 꼭 가 봐야지.
내가 가서 직접 볼거다.'
둘쨋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번 여행 중 들렀던 어떤 도시들 보다도 평화로웠던 텔아비브를 떠나 치고 받는 게 한창인 북쪽으로 갔다. 이샤이는 나를 위해 기꺼이 월차를 내고, 주변의 걱정도 무시한채 가이드로 나서 주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까가이 들려오는 폭발음과 총소리는 전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양옆으로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 도로를 달려서 노란 신호만 깜빡이는, 연기에 싸여 고요한 동네를 지났다. 그 동네엔 차도 사람도 없었는데, 매케한 화염 속에서 홀연히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기사를 쓴다거나, 사진을 찍겠다거나, 영화를 만들겠다거나 하는 목적성을 가졌다기 보다, '치앙마이에 가면 코끼리 트레킹을 해야지' 하는, 전형적인 관광객의 자세로-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전쟁터를 둘러봤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말단 병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을 봤고, 반대로 공격 당하는 것을 봤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것을 한꺼번에 새로 접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적이 몇날이나 있었을까 했던 하루였다."
이 날, 나는 전쟁터로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 드레드 머리는 인도에서 엊그저께 돌아와서 한창 인도가 그리운데 아시아 사람인 나를 만나서 너무 반갑다며 계속 웃어댔다. 그옆에 빨간 얼굴은 '음악이 답'이라며 연신 '피스'를 외쳤다. 자기는 프로페셔널 베이시스트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최전방에서 만나게 된 군인들이라니. 멍하고 몽한 기분이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전시상황에 나라에서 소환명령이 오면 자기 일을 제쳐 놓고 군에 합류한다고 한다. 이샤이네 회사 직원 중 한명도 낮에는 프로그래머로, 밤에는 딜러로 생활하다가 참전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것이 신선하게 느껴져서 '너네들 그런점 참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더니, '그래? 우리는 나라도 지키지만, 우리 집을 지키는 거야. 당연하지 않아?' 답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날은 내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았다. 다음날까지 말을 심하게 더듬을 정도였다.
'우리집에 옳든 그르든 내 가족 아닌 누가 들어와서 내 가족을 해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본 적이 그 전까지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일은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 했었으니까.
그들이 던진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것이 나를 바꿔 놓았다.
'내 나라는 내 집, 내 집에 누가 어떤 이유에서든 쳐들어 오면 나는 거기서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대화로? 그때 나는 뭐든 대화로 푸는 것만이 옳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인데.
하지만 전후 관계가 어떻든 해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내집에 쳐들어온 사람은 뭘로 막을 수 있을까?
나는 그날 인생에 처음으로 병역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봤다.
그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 것이 결국 나를 병역 의무 이행의 길로 이끄는 몇 할의 힘이 되었다니. 덤앤더머냐 전쟁터엘 관광지 가는 것처럼 딱 한나절 다녀와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대한 결심의 씨를 틔웠다니.
공교롭게도 2014년 8월에
공교롭게도 이 세계에 또 '로마-이스라엘-서울-나'가 만나는 지점이 생겼다.
저마다 우연인 척
내가 지금 사는 하루가 내가 살았던 지난 날들과 얼마나 연결이 되어 있고,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에 서로 얼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내가 온몸으로 격렬하게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지만 이 8월을 살며 내내 했던 생각들을 최대한 정확하게 기록해 둬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삶에 대한 실마리라도 얻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