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친구가 본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스크랩 해두었던 것들을 정리하다가 '모과'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내가 맞는지 확인 하려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2001년에 <카이>매거진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사운드 오브 에어포트> 연재를 맺는 글이었다.
그해 1년 동안 나는 EOS5 한대와 PD100A, 파워북 타이테니윰을 짊어지고 SEL을 떠나 BKK(Don Muang) USM HKG LHR CDG AMS MXP IBZ를 거쳐 ICN에 돌아왔다. 배로 갔던 이비자에서는 순전히 공항을 보러 먼 길을 걷기도 했다. 나는 매달 저 도시들에서 했던 여행에 대해 쓰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순전히 공항 자체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 그건 내가 십대 내내 꿈꿔왔던 '여행' 한풀이였다.
글에서 스스로 '서울보이'라고 지칭 했던 것 처럼 나는 저때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서울보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어디를 가던 내가 나고 자란 곳도 같이 알려 지기를 원했다.
털빈 싱, 매트릭스 시리즈, 언더월드, 케미컬 브라더스, 레이지 독, 로저 산체스, 마돈나, 토마토, 테이트 모던, 아마존 등 당대에 진행형이던 시대의 정수를 지구 곳곳에서 쭉쭉 빨아 들이며 지금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만큼 즐겼었다.
국적에 구애받지 않음으로써 내게 잠금해제 된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건 꼭 새로운 것들에 국한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살로', '칼리귤라' 같은 고전들은 보고 있으면 그 작품들이 누린 '표현의 자유'에 몸살이 날 정도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 <키노>에서나 읽어봤던 그 작품들을 센서십 없이 본 것 만으로도 내가 되고자 하는 인간상에 다가선 것 같았다. 신나서 한국에서는 못듣고 못보게 하는 CD와 DVD를 사모았다. 피카딜리 써커스에서 HMV, VIRGIN RECORDS, TOWER RECORDS가 경쟁하던 때였다.
PARC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되고 언젠가는 꼭 저 이름으로 뭐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것도 그때였다. 그때는 사진과 비디오를 열심히 찍었고, 글도 꾸준히 썼으니까 나는 그게 <커먼센스>나 <퍼플>같은 책이 될 줄 알았다.
꿈이 나를 살던 때에 쓴 글이 어떤 고등학생에게 스크랩 되어 13년 후 나에게 돌아온 2014년 마지막 일요일이다.
*여기 쓴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과 겹치기도 한다. 살짝 언급했던 것들에 살이 붙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