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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고리 2

1화의 이스라엘-레바논 전쟁터에 갔던 날은 2006년 8월 5일.

그날 바뀐 내 병역관이 2007년 3월 11일 새벽 두시경 론돈 브릭스톤에서 급진적인 결정으로 폭발했다.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주말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우리 디제이 스펜 형님과 함께 하려고 유나와 브릭스톤의 플랜비에 갔었다. 조규성씨는 아침형 인간이 되시더니 피곤해서 나가기 힘드시단다.

거기서 누나와 윌을 만났다.

딥하우스의 온천에 몸을 담궈보는게 정말 얼마만인지,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매초 계속 됐다. 나는 아버지께서 만드신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디제이 스펜은 오늘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데크에 올랐다. 나는 크라우드를 이리저리 헤집고 한들음에 데크에 올라가 스펜을 불렀다.

'스펜!'

그리고 두 검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씽긋 웃었다.

'오 맨! 하 유 뚜인?'

거구인 스펜이 커다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꽉 쥐었다.

'스펜형, 저 지금 휴가로 론돈에 왔는데, 형이 오늘 플레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

스펜은 정말 기분좋게 나를 반겨줬다.

우리가 웃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웃기 시작했다.

역시 플레이도 환상적이었다.

123비피엠, 쿵 딱 쿵 딱. 

평화와 사랑이 온 클럽 안에 가득했다.'


바로 이때 나는 '다녀 와라.'는 응답을 들었고, 그 이후의 계획을 봤다.

지금 그때를 회상하자니 내가 쓰면서도 현실감이 떨어 진다는 것을 알겠을 정도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성 보다는 '영성'과 '에너지', 주변과의 '하모니'와 '발란스'를 고려 하거나 무시 하면서 내 존재를 다잡는 것에 온통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기도를 아주 열심히 했다. 1화의 여행에서 바티칸에 다녀온 후, 그 고백성사로부터 매주일, 심지어 평일에도 종종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는 것이 일상에 실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교회가 쿨하게 나를 다시 받아 줬으니 나도 교회와 내 인연을 위해 잘해보고 싶었다. 

토요일 밤 딥하우스 클럽에서 행복에 겨워 눈을 감고 춤을 추다가 내가 그때까지 짊어지고 있던 삶의 가장 큰 짐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를 한 것이었다. 그때는 기도가 일상의 큰 부분이었으니까 응당 했어야 할 것을 한 것 뿐이다.

응답-끄덕임-속 시원함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아직 군대에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나는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홀가분해졌다.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같이 있던 누나와 유나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태어나 처음으로 '나 군대에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후 3주간 론돈이 나에게 초단위로 베풀어준 어마어마한 호의는 그때 인물들을 만나 지금 말을 맞춰봐도 그것들이 과연 정말 일어났던 일인가 할 정도로 짜릿했다.

 

'윌은 론돈의 오리지널 씬 메이커 중의 한명으로, 자신의 레코드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앨범도 냈다. 나는 영광스럽게 그의 토요일 밤의 여정에 초대 받았다.

론돈에 온 지 일곱번째만에, 나는 드디어 파브릭을 줄을 서지 않고, 게스트로 들어가게 됐다. 처음 가본 브이아이피 라운지의 느낌은 또 색달랐다. 여기서도 씬메이커와 인사이더들은 서울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해나가고 있었다.

론돈의 인사이더와 클럽랜드의 거대한 피라미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사람, 그리고 그 주변의 몇사람이 이 거대한 클럽제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몇번을 들어도 대단하다. 

 

그 유명한 제이디드가 에그에서 디엔드와 아카로 옮겨온 두번째 주의 파티에도 갔었다. 윌과 함께라면 어디서라도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30명은 서있는 줄의 맨 앞에 서서 여섯시에 파티가 문을 열자마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정오가 다 되도록 또 놀았다.

놀라운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낮까지 놀고 오후에는 또 바로 이어지는 오후 파티에, 그 다음에는 월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는 애프터 파티에 간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과 토요일 48시간 동안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춤을 춘다.

생각해 볼만 한 현상이지 않은가?

재밌고 친절한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정오에 클럽을 나와서 우리는 카나비 스트릿에 있는 누나네 집으로 갔다. 정말 카나비 스트릿 한 복판, 디젤 매장 삼층이 누나네 집이었다. 세상에. 정말 '론돈 플랏 리빙' 같은 책에서나 나올만한 괜찮은 집이었다.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티, 시칠리안 와인을 마시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이 놀라운 세상 살이와, 우리의 인연과, 여행과, 이 멋진 도시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피곤했는데 네시 반이 되니까 거짓말처럼 잠이 깼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워윅 스트릿의 성당으로 달려갔다.

누나네 집에서 오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께서 준비해 놓으신 길을 따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와 함께 나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너와 너, 내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의 날씨는 맑음. 

내 여행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하루였다.'


입영 비행기 앞에서. <미스 리틀 선샤인> 보다가 빵 터져 너무 울어서 나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어야 했다.


후루룩 2009년 3월 11일, 나는 마침내 대한민국 육군을 만기 전역 했다.

대한민국 남자라서 저당 잡혀있던 자유를 내가 직접 되찾았다.


단수여권 안녕, 출국 허가서 안녕.

i'm done with you now, my dear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