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 반이 넘었는데,
잘 살고 있는 건지는 정말 잘 모르겠지만 술은 안마시고 있다.
며칠 전에는 지민이한테 대판 한소리를 들었는데, 요즘 내가 너무 출근을 늦게 하고 퍼포먼스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 그게 내가 술을 끊기로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는데, 나는 술을 한번 마시면 취하지도 않고 새벽 서너시 까지는 기본으로 달리는 편이라 아침이 늘 불안정 했다. 우울을 앓았을 때는 그냥 별게 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도 이불 바깥으로 나가는게 싫었다. 두려웠다고 하는 게 너무 쪼다 같아서 싫었다고 썼다. 밖에 나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녀석이 있었으니까?
그게 요즘 또 왔다.
술을 안마시니까 이제는 밤에 잠이 안오고 눈이 말똥말똥, 가는 시간이 아까워 영화라도 보고 있다 보면 벌써 서너시가 넘어간다.
'그게 그렇게 힘드냐고, 그게 그렇게 극복이 안되냐고' 지민이도 하다하다 지치니까 그랬겠지, 이해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다.
아빠가 일기를 남긴게, 자기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를 혼자서 지내면서 겪은 고초와 고난을 너무나 솔직하고 해맑게 글로 써서 남겨 놓은게 내 세포 깊숙하게 새겨져 '훌훌 털어봐도' 쉽게 옅어지지를 않는다.
중간중간 콱 엉엉 울고, 여러사람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내 속에 있던 것들도 풀어놓고 왔어야 하는데 안그래도 누구 만나기만 하면 위로 받는 입장에서 친구들 만난 소중한 시간에까지 더 그러는 거는 그냥 약자 코스프레 하는 것 같아 끅끅 참고 그러지 않아서 내가 고장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아빠가 떠나니까 그 순간에는 모든게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봐.
톰 행크스가 나오는 '왕을 위한 홀로그램' 이랑 짐 캐리 형님의 '맨 온 더 문'을 봤던게 좀 위로가 됐다.
인생 사는 고비마다 나타나 두어시간씩 나를 달래주는 목소리와 익살이라고 할까?
담배를 끊었고, 술을 안마시는 대신 운동을 날마다 가고 있다. 2주째.
원래 11월 동안만 안마시려고 했는데 12월 까지 더 참아볼까 생각이 들고 있다.
용산역 앞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에 역대 빠르크 중 가장 큰 규모의 세번째 빠르크를 준비하고 있다.
지민이랑 나랑 처음부터 '하고 싶어도 돈이 정말 없어요.' 하고 시작한 일인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마운 도움을 많이 받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힘내자! 하면 힘이 나는 단순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