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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챈

빅터 챈이 서울을 떠났다.


서울을 너무 좋아해서 집처럼 드나 들더니 급기야 서울 근무를 신청해서 서울로 이사를 온지 일년 만이다.

어머니께서도 좀 더 높은 연봉과, 국제적인 기준에서 더 경쟁력 있는 홍콩을 두고 왜 서울로 가냐며 반대 하셨지만 그걸 뚫고 서울에 온 것이다.


빅터는 처음에 빠르크에 손님으로 왔었다.

열명이 넘는 큰 범아시아 일행을 이끌고 몽키를 병으로 시키면서 내가 '우리는 몽키에 오이를 넣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까지 했는데도 오이를 달라고 해서 머리속에 딱 박혔다.

1년인가 후에 클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빅터의 베스트들이어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고, 금방 꽤 친한 사이가 됐다.


빅터는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왔고,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 하니까 뭐든 술술 풀렸다.


빅터는 최근까지 유명한 고급 스포츠웨어 브랜드에 있었고, 30대에 갓 접어든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자리를 맡고 있었다.

이번에 옮겨가는 회사에서는 100여명의 인원을 지휘하는 홍콩 지사 최고위직을 맡게 된다고 한다.


'윗사람들 거 얼마나 빨면 그렇게 될 수 있어?' 

농담을 던지면 빅터는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자기 양 손을 보여 주면서 

'이거 보여? 이정도는 해야 돼.'

잘도 받아친다.


한바탕 웃고 넘어 가지만 사실 빅터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20대 초반까지 살이 정말 많이 쪄서 어딜 가나 뚱보 소리를 듣다가, 본인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격하게 동한게 있어서 몇년에 걸쳐 살을 빼고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누가 봐도 몸이 좋은 사람이 됐다. 

빅터의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정말 자기 입에 아무거나 넣지 않고, 매끼를 신중하게 계획해서 먹는다. 최근 섭식에 과한 데가 있었다면 그만큼에 비례하는 운동을 해서 칼로리를 태운다. 


'너 정말 극성이다.'

놀렸지만 빅터는 집 근처에 하나, 회사 근처에 하나, 이렇게 두군데 짐에 등록했다. 그게 서울에 오자마자 처음 한 일 중에 하나다.

필라테스, 요가, 크로스핏을 그 사이사이에 오가고, 집 근처 남산이며, 서울에 평생 산 나도 안가본 산들로 트레일 러닝을 나가기도 했다.


빅터는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길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1. 꾸준히 찾아주고

2. 매번 다른 손님들을 데려와 서로 소개시켜 주고, 직접 오지 않을 때는 우리를 추천해서 손님들을 보내주고

3. 친절하고

4. 의견을 남겨주고

5. 자기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고


꼭 우리에게만 특별히 이랬던 것이 아니었다. 빅터는 홍콩에 살 때 '야드버드'라는 식당에 하도 많이 가고 홍콩을 찾는 친구들을 매번 꼭 거기에 데려가서 '지분 박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2번 처럼 나한테 '야드버드'를 소개 해줘서 내가 홍콩 들렀을 때 '야드버드'에 갔었고, '야드버드' 대표가 서울에 왔을 때는 빠르크에 식사를 하러 와서 인사를 하고 친구가 됐다. 한 도시가 다른 도시와 하는 교류는 '믹서' 역할을 하는 빅터같은 인물들 덕분이다.


3/4번이 중요한 것은 우리 직원들 입장에서 손님과 진솔하게 교감을 하고 마음을 열면 정형화된 '고객 : 직원'의 한계를 뛰어넘어 단골과의 우정 혹은 의리를 쌓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빅터는 이것도 우리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애용하는 호텔과 항공사에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 사업체라는 것은 규모가 커도 작동원리는 비슷할 수 밖에 없으니 빅터는 당연히 그런 사업장들에 갈 때 마다 본인을 기억하는 직원들에게나, 그들이 부재시엔 메세지를 전달 받은 다른 직원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서비스를 보장 받는다. 

항공사는 캐세이, 호텔 체인은 하야트, 이런식으로 한군데씩만 집중적으로 다녀서 양쪽 체인 멤버십에서 최고 등급을 얻어 낸 것도 참 현명하다.


빅터는 떠나면서 나한테 '긍정' 명언집을 선물했다.


홍콩 가서도 계속 한국말 공부 할거라고 했으니까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