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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g's 2011

나의 2011 [5]

밀라노를 출발한 저는 볼로냐를 거쳐 이탈리아의 7번 국도라 할 수 있는 A14 도로를 타고 동남쪽으로 달립니다.
목적지는 구글링 하다가 발견한 '에미디오 페페' 와이너리. 두번만에 딱 찾았는데, 여기다 싶었어요.
시간도 넉넉했으니까 중간중간 눈길을 끄는 도시가 있다거나 눈에 익은 지명이 있으면 마음껏 빠져서 그쪽을 구경 했어요.

바로 여기, 싼마리노 처럼요.
싼마리노는 이탈리아 안의 작은 나라인데요, 작지만 이탈리아 안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동네라고 하는군요. 높은 소득 만큼 수도도 높은 산 위에 자리잡고 있어요. 운전해서 올라가는 느낌이 서울의 부촌인 평창동이나 한남동 산길을 달리는 것과 비슷했어요. 산 위에 자리잡은 싼마리노 시는 아기자기 알콩달콩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몽쌩미셸 과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동네 사람들 표정에서 뭐랄까, 풍요로움이 느껴졌달까요? 도로나 도시의 풍경도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참 깨끗했어요.

편지 매일 보내고 싶네


싼마리노가 결정적으로 제게 좋은 인상을 남긴건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였어요.
이 지방에서 생산한다는 하우스 와인을 한잔 주문 했는데요,

이렇게 큰 잔에다가


어찌나 후하게 와인을 따라 주었는지, 와인을 한 반병 따른 것 같았어요. 부잣집 인심이 이정도는 돼야죠.

역시 동네에서 난 견과류 파스타


견과류로 만든 파스타는 이날 처음 먹어 봤어요. 빠르마지아노랑 후루룩 달라 붙어서 저 리가떼 면 안팎에서 씹히는 호두의 맛은 양쪽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게 하더군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는 태국에 돌아간 후에- 밀라노에서 사 간 향긋한 엑스버진 올리브 오일에 마늘이랑 로즈메리, 빨강 파프리카 길게 썬 것을 통후추와 소금간에 볶은 후, 빠르마지아노 갈은 거랑 마지막에 캐슈넛등 견과류를 칼등으로 꽝꽝 찧어 양푼에 투하해 로켓 이파리와 삶은 링귀니 면을 휘휘 저어 먹는 저만의 레써피를 개발하게 됩니다.이름하여 '로켓파프리카아몬드로즈메리파마산"양푼"링귀니'- 제가 만들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이런식으로 제가 만든 음식들을 소개하는 카테고리도 곧 개설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셔요. (이젠 예고까지, 종편 났네 종편 났어.)

하우스 와인 인심이 너무 후했던 나머지 저는 싼마리노 성 밖에 차를 대고 산 아래의 경치를 보면서 술을 깨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A14 도로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다가 해안가 국도로 빠져서 한국으로 치면 양양, 주문진, 동해 같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들을 구경 했어요. 지형도 지형이거니와 도로의 배치랄지, 해안선을 따라 철도를 놓은 것까지 7번 국도와 너무도 흡사한 구조가 참 인상 깊더군요. 이탈리아는 제가 언제나 좀 더 샅샅히 보고 싶어 했던 나라였던 만큼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제 마음 가는데로 다닐 수 있어서 참 행복 했습니다. 워낙 지방에도 지역사회와 그 전통이 옛 모습 그대로 살아있는 이탈리아는 알면 알수록 '아따 얘네는 어쪼코롬 이럴까잉!', 부럽고, 질투도 나더군요. 

인셉션 길


운전 중에 도로 건너편의 너무나 멋진 성당을 보고 홀리듯 차를 돌려 들어간 도시 '로레또;Loreto'입니다. (링크는 이탈리아어 싸이트로 이동 합니다만 저 도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을 찾다 보니 이 페이지가 가장 좋더라고요. 사진만 보세요.)
이 도시에서는 새벽 한시 이후에 길에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저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성당과 도시는 아름답고 자시고를 넘어서 그냥 현실 같지가 않았어요. 제가 꿈을 꾸면서 걷는건지, 걸으면서 꿈을 꾸는건지 아득해 지더라고요. 하루종일 운전을 했더니 실제로 졸음도 막 몰려 왔습니다. 조금만 더 돌아 다녔다가는 아마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네로처럼 교회당 안에서...됐고요.

이건 오늘 구글링 하다가 안 사실이지만 저곳은 카톨릭의 가장 중요한 성지 중에 하나랍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태어나신 나자렛 집이 투르크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옮겨져 온 곳이라고 합니다. 이럴수가!

제 인생에는 참 다양한 우연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카톨릭 신자가 된 것도 참 묘했어요. 저는 무교 집안의 엉뚱한 장남으로서 어릴적에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가고 부처님 오신날에는 연등 행렬을 따라 나섰다가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5학년때 어느날 저는 갑자기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겠다며 성당에 다니던 친구를 따라 생전 처음 성당에 갔어요. 수녀님은 '너희 부모님 중에 한분이라도 세례를 받아야지만 너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며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더군요.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갔습니다. 사실 엄마는 '예수쟁이' 이런 단어도 가끔 사용 하시는 무신론자 였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는 과연 엄마가 오케이를 해줄까 했었는데요, 의외로 엄마는 사실 너의 태몽은...(이부분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므로 패스 하겠습니다.) 라며 흔쾌히 수녀님께 제가 먼저 세례를 받으면 자기도 받겠다고 약속을 해버립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딨습니까? (아빠 미안) (네, 저희 아빠 요즘 페이스북 하셔서 이거 다 보고 계세요. 맞지 아빠?)


그렇게 해서 제가 세례를 받았고요, 그다음에는 엄마, 동생, 아빠까지 모두 세례를 받아 저희집은 친척들에게 지탄 받는 '성가족'이 됩니다. 저희 친할머니께서 돌아 가시기 전에 '남묘호랑개교'를 믿으셔서 가끔 할머니 제사 때는 사촌 큰아버지가 오셔서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오오-'하는 기도도 드리고 하셨던 그런 거시기가 있었거든요. (아빠 또 미안)

제 신앙심은 뜸 들여 짓는 거대 가마솟밥 같아서 밥이 언제 다 될랑가는 모르겠지만, 제가 선택한 카톨릭은 종종 제 앞에 이런식으로 나타나 저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여기서 앞뒤가 안 맞긴 해도,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성지의 사진만 보고도, 혹은 성모님을 꿈에 한번 보기만 했는데도 지병이 나았다는 이탈리아 시골 할머니 식의 은총을 여러분께도 나눠 드립니다. 여러분 몸과 마음에, 그리고 주머니에 평화 있기를.

저는 차댈 곳을 찾아 더 남쪽으로 내려 가다가 어느 작은 해안 마을의 주유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을 잤습니다.
 

지중해!


드디어 지중해!
에 도착 했지만 아아아 이럴수가!
저는 1월에 나폴리에 갔을때 반팔로 돌아 다녔던 것을 떠올리고 조금 춥더라도 바닷물 안은 따뜻하겠지 혼자 그럴듯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거든요. 그래서 심지어 수영복까지 챙겨 갔었습니다. 그런데 저 맑은 날씨에 신이 나서 차문을 열려니까 일단 차 문이 쉽게 안열리데요. 저를 뚫고 갈듯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바다쪽으로 가까이 걸어가 봤는데, 철 지난 해수욕장이 얼마나 쓸쓸한지 아시죠? 아무리 지중해라도 그건 피해가지 못하나 봅니다.
지중해의 뜨거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로 달려가며 액션 탈의를 한 후 바닷물에 뛰어 들려던 나으 계획은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가? 
 

이런 투박한 모양새지만

 

대신 저는 운전 하다가 띠리티띡 탁 골라서 들어간 해안가의 후즐근한 식당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환상적으로 맛있었던 '스파게티 프루티 디 마레'를 맛보게 됩니다. 저기 들어가는 재료들은 흡사 고성 수성반점의 해물 짬뽕 재료들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저렇게 투박한 비쥬얼이지만 바다의 맛을 쌍끌이 그물로 끌어다 충실하게 살려 놓았습니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주인장께 조리법을 여쭤 봤더니 세상에 와인도 쓰지 않고 그냥 마늘하고 토마토, 파슬리 만으로 맛을 냈다는 겁니다.
난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MSG 쓰나요 이태리에서도?

아무튼 저 댁은 주인장서부터 일하는 분들까지 모조리 다 한덩치 하셨는데요, 나온 음식의 양을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저 홍합 아래 가려진 스파게티의 양은 어마어마 했습니다. 일인분이 아니라 한 2.5인분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다 먹은 저는 저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어서 심지어 그날의 특선을 여쭤 봤습니다. '해산물 숲'이라데요. 주문 했죠. 저는 혼자니까 혼자서 먹기 좋은 그만큼 주실 줄 알고요.

자, 잘못 했어요.

 
아아아, 4인 가족이 먹어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해물탕이 나온 거였어요.
저 안에는 근처 강과 바다에서 잡아온 것이라고 확신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하고, 상당히 거친 외모의 자잘한 생선들도 들어 있었고요(사진도 있는데 충격 받으실까 못 올리겠네요. 빠가사리 같은 애도 한마리 있었거든요. 이탈리아 음식에 빠가사리라니. 쩝),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신비의 전골이었습니다. 맛은 굉장했어요. 너 꼼짝마! 급이었습니다. 저 바구니에 담긴 빵 보이시죠? 저 혼자 갔는데도 빵을 저만큼 갖다 주시더라고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혼자서 약 한시간에 걸쳐서- 그래도 음식 해주신 분이 서운하지 않을만큼 비웠습니다.
아, 생각 나네요. 토마토를 기본으로 매콤하게 끓여낸 저 숲에 저 바삭한 토스트를 푹 담갔다가 홍합이랑 조갯살을 따악 얹고 후루룩 입속에 집어 넣으면 제가 흰수염고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배가 터질듯 빵빵 해져서 거의 기어 나왔습니다.

저는 다시 페페 와이너리를 향해 달렸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아이폰이 있어서 찾아 가는데 별 문제는 없었어요. 씸카드가 없었음에도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 경로 검색을 해놓으면 지도 앱에 주요 지점이 다 남아 있더라고요. 아이폰을 구입한 이후의 여행은 여러모로 대단히 편리해 졌습니다. 사실 거의 1년이나 지난 그때 이야기를 오늘 생생하게(읭?)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제가 틈틈히 아이폰에 메모를 하고, 인상 깊었던 것들은 그때그때 트윗을 했던 덕이어요. 저는 'momento'라는 아이폰 앱으로 트윗도 백업해 둡니다. 티끌 트윗도 모이니까 꽤 쓸모가 있네요.

산을 오르락 내리락, 이제는 농로로 접어 듭니다. 거기서는 좀 헤맸어요. 이건 제가 유럽에서 렌터카를 해서 몇번 다녀 보면서 느낀 건데요,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에 국도도 아니고 농로가 나타나면 제가 네비게이션과 이 시대를 불신하게 됩니다. '뭐? 니가 이 농로까지 알고 있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어우 나를 어디 이상한데 갖다 쳐박아 놓을라고!' 이런 생각이 들죠. 그래서 제가 네비게이션을 무시하고 표지판을 보고 재주껏 찾아 가려고 하면 꼭 헤매게 됩니다. 일단 농로까지 저를 데려다 놓은 데는 그 농로가 아니면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진리가 있는 거더라고요. 그리고 유럽의 네비들은 '아니 정말 늬들이 이런데 까지 와보고 경로를 이렇게 잡아 준다고?'의 대답은 '응, 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믿고 따라 가세요.

저는 산을 몇 바퀴 돈 다음에야 겨우 목적지, 페페씨의 와이너리에 도착했습니다.
불과 여섯시 경이었지만 이미 해는 져서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고요, 저는 이틀이나 걸려 거기까지 갔는데 와인 맛도 못 볼까봐 한껏 초조해 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조용한 산위의 빌라는 산등성이를 타고 심어진 포도나무들을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있더군요. 일부러 기침도 크게 하고 인기척도 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누구든 그 늦은 시각에 찾아온 이방인을 보고 혹여 놀라지 않도록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얼굴엔 애써 썩소를 짓고 있었죠.

이층으로 올라가 보니 안에서 불빛도 새어 나오고, 인기척이 있길래 조심스레 노크를 했습니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똑똑!

곧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한 숙녀분이 나오시더군요.
사실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을 하러 갈 때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예의지만, 저는 충동적으로 이 여행을 떠나 오게 되면서 예약 신청을 보내고 답메일을 받고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날 밝을 때 가서 정중하게 부탁을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산동네는 해가 좀 더 일찍 진다는 것도 감안을 해야 했던 거죠, 네. 만약 그냥 돌아가야 하더라도 그건 다 제 책임입니다.

여하간에 저는 '늦은 시각에 죄송하지만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 하던중 댁의 와이너리를 발견하고 흥미가 생겨서 꼭 찾아와 보고 싶었는데, 여차저차 해서 이시간에 도착 하게 됐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게 댁의 와이너리를 좀 둘러보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했더니,

'Sure'. 이 대답은 누군가의 부탁에 저렇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멋져 보이게 만드는 '매직워드'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문을 열고 저를 처음 맞아주신 숙녀분은 이 와이너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 '에미디오 페페'씨의 따님이셨고요, 그녀의 딸인 '키아라' 양이 곧 유창한 영어로 제게 와이너리의 이곳 저곳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키아라양은 열일곱살.
하지만 이미 가족 와이너리의 대를 이으려고 마음을 정했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살다살다 열일곱살 소녀에게 와인 테이스팅 가이드를 받게 될 줄을요? 하지만 그녀가 자기네 와인의 역사, 특징과 생산 과정, 특히 와인 숙성 과정의 놀라움을 설명하며 살짝 목소리를 높이던 순간에 전 그냥 닥치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녀에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와인이란 개 키우는 사람이 어릴때 부터 키운 반려견의 면면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는 것과 같겠지요.
그녀가 병을 따서 코르크의 향 먼저, 다음으로 병안에서 올라오는 향을 맡아보고 제게 권하던 그 순간은 참으로 숭고한 거시기였습니다.


1979!


아름답죠?
이곳에서 빚어내는 '몬테풀치아노다부르쵸' 품종은 다루기가 워낙 까다로워서 이댁에서는 전 과정 손으로 직접 포도(무농약 재배 한답니다)를 따고 밟고 짜고 한답니다. 그래서 일년에 오직 육만병만 생산 한다고 하는군요. 여기서는 금속과 나무도 쓰지 않고 콘크리트통에서 이년간 일차 숙성시킨 후에 병에 담아 바로 이곳, 지하 저장고에서 추가 숙성 과정을 거친 후 출고 전 일일이 병을 따 다시 디캔팅한답니다. 그리고 출고 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다시 코르크를 막고 라벨을 붙여 박스에 담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가내 수공업. 

최근 빈티지는 2000년과 2001년산, 권장 숙성 연차는 9년이라고 하더군요.
한참 설명을 듣고 있는데, 
두둥!

씬요레 페페


1964년에 이 와이너리를 개척해 일궈 내신분, 바로 이곳 와인 이름의 주인공, 페페씨입니다.

*제가 위와 같이 적었는데요, 제가 다시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까 이 에미디오 페페씨는 저분의 증조 할아버지인 창립자 에미디오 페페씨와 같은 이름을 쓰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이미 1899년 부터 와인을 생산해 왔고요, 1964년에 사진속의 페페씨가 사업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키아라 양이 가업을 물려 받게 되면 무려 5대째가 되는 것이로군요. 무척 흥미로운 정보가 많으니 와인 좋아 하시는 분들은 링크한 싸이트로 이동하여 읽어 보세요.*

우하하, 영광영광!
이렇게 직접 어떤 와인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이 믿는 것들을 담아 내려고 평생을 다한 '창조자'를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게 되다니, 저 흥분하면 무진장 시끄러워 지거든요. 하하하 웃으면서 꼭 알고 지냈던 분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페페씨 뒤로 보이는 사진은 포도 수확 후에 전 가족이 다 모여서 포도 찧는 장면이랍니다. 

그리고 드디어 테이스팅 시간.
이곳의 젊은 와인들은 디캔팅을 좀 해야 아로마가 뿜어져 나온다고 해서 와인을 따놓고 좀 기다리던 중에 모녀와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일단 늦은 시각에 둘러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줘서 그라찌에 밀레, 댁의 따님이 이 와이너리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으며 참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군요.'라며 제가 느낀바를 말씀 드렸죠. 차분한 모녀는 빙긋이 웃으며 고맙다고 하시더니 '숙소는 구했나요?'라고 물어 보시더군요. '돌아가는 길에 읍내에서 자고 가려고요.' 그랬더니, 그러면 '자고 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하! 이분들은 별채를 B&B로 운영하고 계셨던 것이었어요.

완벽한 하루죠. 저는 운전 걱정 할 것 없이 와인도 마음껏 마실 수 있었죠. 게다가 하룻밤을 차에서 잤더니 무진장 찌뿌둥 했거든요, 샤워도 무진장 하고 싶었고. 키아라 양이 와인도 새걸로 한병 따서 아예 방으로 갖다 줬습니다. 방은 깨끗하고 운치 있었고요.

두시간에 걸쳐 맛 본 2007년산은 설명대로 뒤로 갈수록 향이 더 짙어 지더군요. 한모금 마시고 페페씨 얼굴 떠올리고, 저분은 왜 이런 맛을 병에 담으려고 하셨을까 상상력을 발휘해 봤습니다. 한병 다 마시고 나니까 제 마음에 들더라고요.
씩 미소가 절로 지어 지더군요. (그러면서 거울을 봤더니 이가 푸르딩딩)
푹 꼬꾸라져 잠에 들었습니다.

역사에 기록해도 좋을만큼 깊은 숙면을 취한 아침


상쾌한 아침이었습니다.
얼른 저 창을 열고 이른 봄의 포도원을 내려다 보고 싶었어요.
활짝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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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시 제가 미쳤는 줄 알았어요.


이 여행에는 참말로 진짜 제대로 눈 복 터졌네요.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이탈리아 친구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며, 지중해 간다고 약올리던 저를 마음껏 조롱 하더군요.
2월 끝자락에, 그것도 밀라노 보다 훨씬 남쪽에서 눈을 보다니.
보는 저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웃음만 나오더이다.

이탈리안 브렉퍼스트


이탈리아 사람들 아침은 거의 다 이렇데요.
에쓰프레쏘가 싫으면 카푸치노.
전 그래도 아침에는 계란 두어개 정도는 어떻게 사단을 내야 먹은 것 같던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이 댁을 떠나면서 이러저러 해서 결혼식에도 못 가본 선자와 파브리 커플에게 줄 선물로 2000년 빈티지를 한병 샀습니다.
'마침 너네가 결혼을 2010년에 했으니까 이 와인은 너네의 10년마다(every decade) 더 특별해 질거다. 10년 20년 30년, 너네 마음에 드는 해에 따서 먹으라.'며, 뭐 그럴듯 해보일 것 같아서요. 나중에 다행히 파브리치오가 저의 이 헛수작을 굉장히 즐겁게 받아 주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꽤인 풍경


눈은 낮이 되니까 다 녹았어요.
눈이 녹고 난 들판에는 새 봄이 저렇게 푸르게 올라오고 있었다는 이런 가식적인 마무리. :-)

오늘 역사의 거대한 사건을 맞이한 북녘의 땅에도 새 봄이 올라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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