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g's 2011

2010년 1월 1일, 바가토 제대 후 태국에 정착해 처음 맞는 연말, 군대 가기 전에 쌓아둔 로열 오키드 플러스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곳을 보니까 인도와 네팔이 있었다. 제대 후 첫 새해를 에베레스트 처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 보다 초월적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배경으로 맞으면 그 이후의 내 삶에 광명이 깃들 것 같았다. 인도에 딱히 환상이 없었고, 동행한 옹이 인도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후기를 많이 접한 터라 우리는 인도 2주, 네팔 3주 한달짜리 신년 여행을 계획했다. 도착은 뭄바이. 지금은 어마어마한 신공항이 완성되어 환상 국가에 어울리는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때 우리 비행기 양쪽으로 들어온 공항 주변은 '올 것이 오고 있구나.'할 정도로 어마무지한 난장판 슬럼 그 자체였다. 태국인 승무원들은 '공항을 나서.. 더보기
나의 2011 [11] 엄마가 다녀간 후 저는 엄청난 감정의 동요를 겪게 됩니다. 휴양지에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누군가 왔다가 떠난 뒤에 혼자 남는 거였어요.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크다잖아요? 아무래도 엄마라 그런지 이번엔 그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올해는 특히 많은 분들이 방콕에 놀러 오셨던 터라 여름 내내 방문자가 없었던 주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8월의 어떤 날에는 하루에 서로 모르는 사이인 네팀이 겹친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정양이 다녀간 이후에는 트위터를 통해 '당분간은 책 쓰는 거에 집중하기 위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도 했지만, 저는 사람들 만나는 거를 참말 좋아 하니까 누가 왔다 하면 만사 제치고 쫄랑쫄랑 튀어 나갔죠. 제가 실수한 것은 거기서 제 생활 리듬을 너무 돌보지 않았다.. 더보기
나의 2011 [10-1] 태국에서 사는 동안 저의 신분은 공식적으로 '여행객'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이 태국에 가면 공항에서 3개월짜리 관광비자를 주잖아요? 저는 그 관광비자로 2년반을 살았던 거였어요. 제가 태국에서 딱히 경제활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 제게는 관광비자가 적절한 것이기도 했죠. 태국에는 그런식으로 3달에 한번씩 관광비자를 갱신해 가면서 10년 이상 살고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나마 한국사람들은 3달이지만 미국사람들은 한달에 한번씩 외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그런분들은 정말 대단하죠. 태국은 포용력이 대단한 나라인 것이 여권이 온통 태국 출입국 도장으로 가득한 외국인들이 몇번이고 재입국을 하더라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별 다른 질문도 없이 새 비자 도장을 쿵쿵 찍어 줍니다. 대인배죠? 그리하여 세달에 한번씩, 저는 태.. 더보기
나의 2011 [10] 8월. 저의 8월은 제 인생의 그 어떤 8월 보다도 뜨거웠습니다. 제 감정샘의 저 바닥부터 저 위까지를 넘나들게 했던 많은 일들이 8월에 일어 났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온전히 나의 의지로만 진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크게 깨달은 한달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것, 인연이라는 것의 의미를 편안한 생활 속에 무뎌져 있던 제게 문신처럼 새겨준, 저의 8월입니다. 8월 5일, 저는 서랍을 정리 하다가 처음 태국 집에 이사 하면서 쓴 계약서를 발견합니다. 6개월의 계약기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죠. 6개월만 '아무것도 안하고' 살아 보겠다며 방콕 생활을 시작하고, '세달만 더'를 거듭한 끝에 어느덧 입주 2주년이 된 것입니다. '이정도면 됐다. 나는 푹 쉬었다.'는 생각이 드디어 들더군요. 뭐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 더보기
나의 2011 [9] 째박이는 서울에 돌아가는 표를 한번 두번 바꾸더니 아예 떠나는 날을 티켓 유효기간 마지막 날로 바꿔 버리더군요. 워낙 태국을 사랑했던 녀석이라 한번 돌아오니 떠나기가 싫었던 모양이에요. 저는 처음 예정된 3주 동안은 최선을 다해 째박이랑 재밌게 놀아 줬지만 이게 점점 길어 지면서 제가 연초에 나름대로 세웠던 여러가지 계획도 흐지부지 되는 것 같고, 혼자만의 시간도 그리워 져서 점점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째박이는 몰아 세우면 덤비는 스타일이라 어느날 밤 뭐라고 좀 했더니 술이 떡이 돼서 울고불고 진상 피우면서 저보고 '장남으로서 정신 좀 차리라'고 하더군요. 저는 '당분간은 너가 우리집 장남이다.'로 맞섰습니다. 애초에 싸움도 어디 쿵딱이 맞아야 하잖아요. 막 울면서 꼬장 피우던 녀석이 정신.. 더보기
나의 2011 [8] *이번 포스트부터는 눈이 침침하시다는 제 아버지를 위해 글자를 좀 더 크게 씁니다. (아빠, 아들 효자지?) +오늘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어젯밤에 제 노르웨이 친구 토마스가 저에게 성탄 인사를 건네면서 전해온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네, 이 이야기 1편에 나오는 바로 그 토마스요. 그는 저에게 따로 'Please spread this news to the world; 이 소식을 온세상에 전해줘.'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올 겨울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답니다. 심지어 성탄절이었던 어제의 기온은 영상 8도였다는군요. 매년 눈속에 폭 파뭍혀 있었던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푸른 잔디 위에서 성탄을 보내는 기분이 얼마나 낯설었을까요? 제가 올 겨울 들은 소식 중 가장 무섭고 염려되는 소식입니.. 더보기
나의 2011 [7] 여러군데 여행을 다닌다고 다녀 봤지만, 사막에 가본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냥 저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제 뇌 속의 이미 굳어버린 부분의 껍질이 호두 까지듯 탁 깨어나는 기분이었어요. 사실 이 사진 바깥의 풍경은 꽤 아수라장입니다. 두바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는게 그닥 많지 않으니까 이런 사막 사파리 같은 것을 개발해서 관광객을 유치 하는데요, 저도 사실 그 싸파리 투어 차에 타고 저기를 간거였어요. 여기저기서 4륜구동 RV 차량들이 사막을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멀미를 선사합니다. 좀 더 다이나믹하게 차가 사막에서 데굴데굴 구른다거나, 매드맥스에 나오는 것 같은 사막의 와일드한 질주 이런 것을 상상하시면 노노. 온가족이 다함께 탈 수 있는 회전목마 같은 거.. 더보기
나의 2011 [6] 페페씨 댁에서 밀라노로 돌아오는 길에 사실 저는 '친퀘테레' 라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들을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밀라노 근처에 다다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만사 귀찮아진 저는 그냥 밀라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여행 첫날 오슬로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편도 티켓을 들고 간 저를 붙들고 한참동안 이것저것 질문하던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저에게 노르웨이에 몇일 동안 있을거냐고 물어 봤었습니다. 저는 길면 "보름" 정도라고 대답 했는데, 이미 그의 네배나 되는 기간동안 유럽에 머물렀군요. 페이스북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자기네 동네에는 안올거냐고 계속 물어 보기도 했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암스테르담도 론돈도 로마도 너무너무 가고 싶었죠 물론. 하지만 한편으로는 .. 더보기
나의 2011 [5] 밀라노를 출발한 저는 볼로냐를 거쳐 이탈리아의 7번 국도라 할 수 있는 A14 도로를 타고 동남쪽으로 달립니다. 목적지는 구글링 하다가 발견한 '에미디오 페페' 와이너리. 두번만에 딱 찾았는데, 여기다 싶었어요. 시간도 넉넉했으니까 중간중간 눈길을 끄는 도시가 있다거나 눈에 익은 지명이 있으면 마음껏 빠져서 그쪽을 구경 했어요. 바로 여기, 싼마리노 처럼요. 싼마리노는 이탈리아 안의 작은 나라인데요, 작지만 이탈리아 안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동네라고 하는군요. 높은 소득 만큼 수도도 높은 산 위에 자리잡고 있어요. 운전해서 올라가는 느낌이 서울의 부촌인 평창동이나 한남동 산길을 달리는 것과 비슷했어요. 산 위에 자리잡은 싼마리노 시는 아기자기 알콩달콩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몽쌩미셸.. 더보기
나의 2011 [4] 싸왓디, 옹! 옹입니다. 이름이 옹이에요. 한자 왕을 태국식으로 읽으면 옹이 된답니다. 저의 태국 동생입니다. 2009년 군대를 제대하고 별 거 없이 지내던 차에 샹하이와 방콕을 오가며 살던 라오찐이라는 제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었어요. 그 친구는 워낙 서울을 오래 떠나 있었으니까 서울을 잘 몰랐고요. 그런데 마침 옹과 다른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오게 됩니다. 옹과 라오찐은 샹하이에서 쭝궈말 어학당 다니다 만난 사이였답니다. 라오찐은 저와 허형이라는 제 친구더러 딱 하루만 얘네랑 만나서 같이 놀아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만났습니다. 저야 뭐, 스무살때 처음 태국에 가본 이후로 그나라에 홀딱 반해서 적어도 일년에 한두번은 태국에 갔었을 만큼 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태국 친구들이라니 아주 흔쾌히.. 더보기